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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05] 하나님의 명령, 네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 -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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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05] 하나님의 명령, 네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 - 아브라함과 이삭 이야기

빚진자TV 2020. 6. 21. 15:57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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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100세가 다 되어가도록 아들 하나 없었습니다.

 

물론 하갈이라는 첩으로부터 얻은 하나의 아들이 있긴 했습니다만, 아내로부터 얻은 아들은 아니었죠.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내인 사라로부터 얻게 될 아들을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될 것이라 약속하셨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라를 통해서 낳게 될 그 아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어나갈 자이며, 그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어 열방 가운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실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약속을 지키겠노라 약속하시며, 스스로 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찢겨져 죽은 짐승처럼 되겠다는 약속을 하는 일종의 의례도 행하십니다. (15:17 쪼갠 고기언약)

 

그리고 결국 아브라함은 아들인 이삭을 얻게 됩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 100, 아내인 사라의 나이는 90여세로 추정합니다. 이미 아이를 출산할 수 없을 정도로 늙은 나이였던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나게 하셨으니 가히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삭에서부터 나오는 후손들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씨라 부를 것임을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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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오늘의 말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아들, 너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대로 행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죠. 종 두 명을 데리고 이삭과 함께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쪼개고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에 도착해 종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려라. 나와 이삭만 함께 올라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마.”

 

그리고는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이삭에게 들게 하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든 체 산을 올라갑니다.

 

아들인 이삭이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번제에 사용할 나무와 불은 있는데, 왜 제물이 없는겁니까?”

 

아브라함은 대답했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 하실테니 걱정말거라.”

 

그리고는 모든 준비가 끝나자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고 죽이기 위해서 칼을 꺼내어듭니다.

 

바로 이때,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너의 아들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주위를 살펴보니 수풀에 뿔이 걸려있는 숫양이 있어 그 양을 가져다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복의 약속을 받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의 전체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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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가 이 이야기를 접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몇 가지의 의문을 떨쳐버리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는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신제사를 요구하시다니 이건 하나님답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 두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바라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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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늘 이야기의 시작부분에서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22:1)”

 

, 애당초 오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굳이 시험해야 했을까요?

 

그런 시험이 없더라도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고, 또한 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능치 못하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에게 시험을 요구하신 것일까요?

 

이 내용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한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싶어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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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한 어느 대기업 회장이 있었습니다. 그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죠.

 

대기업의 회장이었지만 아들만큼은 아무런 의무도 없이 그 권리와 특혜를 누리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물론 회장은 아들을 자신의 권한으로 높은 직위의 직책까지 단 한 번에 올려놓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회장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고, 아들에게 본인의 실력을 스스로 증명해서 높은 직책에 올라와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후대의 자손들이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아들은 가족사항에 대한 부분을 숨긴 체 말단 직원인 인턴부터 시작해 정식으로 공채에 합격하여 사원으로 입사합니다. 회사에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이 아들은 놀랍게도 훌륭한 성적으로 큰 성과를 회사에 안겨주었고 고위 직책에 올라갈 수 있었죠.

 

훗날 이 아들이 회장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도 아무도 그에게 의혹을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증명하고 입증한 실력과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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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아들이 회장의 아들이라는 아무런 특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이 회사에서 훌륭하게 높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그 아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회사에서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을 어릴 적부터 받아 실력을 꾸준히 쌓아왔어야 했기 때문이죠.

 

물론 아들도 그 많은 교육을 소화하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많은 노력을 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교육은 아버지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대학은 어떻습니까? 훌륭한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소화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교육의 비용 역시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직접적인 특혜를 받지는 않았겠지만, 간접적으로는 부모의 영향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입사 전까지 투자된 부모의 노력으로 이 아들이 승진에 특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공채시험을 통과해서 회사에 당당히 입사한 것은 순전히 아들의 몫이었고, 회사 내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실적을 이끌어낸 것도 아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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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조상... 이 얼마나 위대한 칭호입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단군이 아닌 아브라함이어야 합니까?!”, “왜 한국인이 아닌 이스라엘입니까?!” 라고 항의하신다면 이는 왜 내가 아닌 저 아들은 회장의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까?” 하고 항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냥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닙니다.

 

마치 당신이 당신의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도 당연하게 여기시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만큼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있으셨겠죠.

 

마치 그 회장이 아들에게 요구한 바가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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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훌륭하게 하나님이 원하셨던 시험의 답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 답을 가지고 있게 되기까지 많은 교육과 훈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본토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을 데려오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죽을 것을 두려워해, 파라오에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였던 사건도 있었고,

 

이삭을 낳을 것을 기다리지 못해 86세가 되던 때에 이스마엘을 갖게 되는, 그런 믿음이 부족한 결정을 합니다.

 

회사에 입사해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게 되기까지, 회장의 아들은 부족한 모습에서 많은 교육을 받고 성장해야 했듯,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였지만, 하나님이 이끄는 성장의 시간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시험이야말로 이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을 만한 그릇임을 온 천하와 후대의 사람들, 그리고 믿음의 후예들, 심지어는 아브라함을 서둘러 말린 하나님의 사자에게까지 보여주는 마지막 피날레였던 것이죠.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도 인정하는 신앙의 수준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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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의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이 당시의 몰렉신앙과 같은 인신제사를 원하셨던 것일까요?

 

하나님답지 않습니다. 윤리적이지도 않고 정당성도 없습니다. 대체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일까요?

 

아들을 죽여서 태워버리는 번제로 바치라...... 여기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 너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지니라. 나는 주니라(18:21)”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20:2-5)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율법에 규정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몰렉신앙을 보이는 이스라엘 자손은 반드시 쳐 죽일 것을 명령하셨고, 이를 못 본 체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 분명히 율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몰렉신앙은 페니키아 지방의 고대 신앙으로 아기를 아궁이에 넣어 제물로 바치는 예배의식을 했던 종교 신앙입니다.

 

이렇게도 인신제사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매우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며, 피 흘리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는 명령을 내리시다뇨...

 

아브라함은 이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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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살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답지 않은 명령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삭을 죽이거나 이삭의 후예를 없애버리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죠.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 죽음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있을 것이라 믿은 것이죠.

 

아브라함은 괜히 믿음의 조상이 아닙니다. 물론 먼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 믿음의 경지까지 훈련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아브라함은 그 훈련의 과정을 충실히 따라주었으며, 믿음의 조상에 걸맞는 수준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부활할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부활신앙이었습니다.

 

먼저 아까 이삭과 산을 오르기 전 종들에게 던진 아브라함의 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22:5)

 

분명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며 이삭과 함께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개혁한글과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에는 돌아오는 대상이 명확하게 아브라함과 이삭이 함께 돌아오겠다는 말은 없습니다만 원어성경의 본문을 직역하면 웨나슈바”, “그리고 우리가 돌아올 것이다라는 복수형태의 동사가 명시되어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바로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입니다.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11819)

 

18절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불리게 될 사람들은 바로 이삭으로 말미암게 되리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에 19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살릴 것으로 믿고 있었다는 내용이죠.

 

이미 이러한 부활신앙이 있던 아브라함이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살리실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 또한 아브라함은 이삭을 기꺼이 번제로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이 시험은 답을 알려주고 보는 지필고사처럼 처음부터 결과가 자명했던 시험이었습니다.

 

전적인 신뢰와 믿음의 관계, 그것이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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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며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저에게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때 아브라함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었단다. 아브라함은 나의 마음을 정말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되기까지 참 많은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지. 아브라함은 기꺼이 그 훈련을 잘 견뎌줬고, 그 점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야. 그리고 난 너 역시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예답게, 그 믿음으로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신앙을 이어갔으면 좋겠구나.”

 

아브라함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를 택하시고 믿음의 조상이라는 그릇으로 훈련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죠. 하지만 그 훈련의 과정을 따라준 아브라함 역시도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가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믿는 모두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예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 혈통이 아브라함의 직계 후예인 유대인인 것은 아니지만, 나무의 원 뿌리에서 나오는 줄기에 새로운 다른 나무의 가지를 접붙인 것처럼 말이죠.(로마서 1117)

 

믿음의 조상의 선례를 따라 우리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