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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07] 첫째 아들의 입장이 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 - 돌아온 탕자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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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07] 첫째 아들의 입장이 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 - 돌아온 탕자 이야기

빚진자TV 2020. 7. 2. 20:29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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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혹 이 이야기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잠시 요약해서 설명해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재산 중에서 나에게 물려주실 부분을 미리 주세요.”

 

그래서 아버지는 언젠가 그 아들에게 상속될 유산을 미리 주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이 유산을 가지고 집을 떠나게 되고 허랑방탕하게 살며 그 재산을 낭비해버리죠.

 

결국 있던 돈은 다 써버리고, 흉년이 들어 궁핍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돼지를 돌보는 일을 얻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돼지한테 주던 쥐엄열매를 얻어먹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자신에게는 주는 사람이 없었죠.

 

비참한 마음이 들고 자신의 현실이 너무 힘들었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때를 추억합니다.

 

우리 집에는 하인들도 있었고, 재산도 있었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죽는구나..”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만, 아버지에게 얼굴을 보일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품꾼 종이 되어 그 집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죠.

 

집으로 돌아가니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고 환영합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이것이 바로 전체적인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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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마무리로 결말을 맺는 예수님의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교훈으로 우리에게 설교가 되곤 합니다.

 

우리는 마치 둘째 된 탕자와 같다는 것이죠.

 

맞습니다. 우리는 둘째 아들 된 탕자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마땅한 것이죠.

 

그리고 행복하게 다시 우리를 맞이해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사실 표면적인 교훈만을 얻자고 말한다면, 우리에게는 이 정도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둘째 아들이니깐요.

 

하지만 왜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꺼내셨는지에 대한 배경은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일까?

 

누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신 것일까?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래야 우리는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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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의 처음을 주목해볼까요?

 

처음 15장의 1절에서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가까이 나왔다고 되어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5:1)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모여 식사도 하시며 복음을 전파하셨죠.

 

그러자 그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요점은 그것이었죠. “왜 저 사람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는가?”

 

,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과 좋은 소식, 구원의 기쁨은 그 동안 의롭게 행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던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인데, 죄인들과 새리들에게 그 가르침을 전파한다? 그렇다면 그는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입을 열어 3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는 잃어버린 어린 양과 그를 찾아다니는 목자의 이야기,

 

또 하나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나누었던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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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당신은 메시아라면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종교생활을 하며 거룩하게 생활하고자 했던 우리들이 아닌,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겁니까?

 

죄인들은 심판해야 마땅한 것이죠.

 

사실 듣고 보면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쁘게 살아온 사람은 벌을 받는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온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칭찬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인과 새리들은 책망하고 훈계하고 심판을 내리셔야 마땅하죠.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시작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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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을 미리 달라던 둘째 아들의 이야기에서 바리새인들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아니 그런 천하에 찢어죽일 놈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둘째 아들에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 아들 그 녀석은 정말로 율법의 적힌 대로 심판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요구한 그 부탁은 단순히 돈을 달라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 그 재산을 상속받는 것은 유대사회에서는 납득되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유대인의 문화에서 설명하자면, 비록 아버지가 생전에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을 미리 정해놓았다 하더라도 자식은 그 재산에 손을 댈 수 없었으며, 이를 주장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큰 모독이라 합니다

 

즉 아들은 아버지에 대해서 당신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끊고 이 집을 떠나겠습니다.”라는 선언을 한 것이죠.

 

이런 패역한 아들에게 율법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신명기 2118), (중략)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명기 2121)

 

그러니 이 이야기를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분노에 치밀어 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분노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다음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에 그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원하는 대로 재산의 반을 주고, 아들은 떠나갔다.”

 

유대인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돌로 쳐도 시원치 않을 아들인데, 그저 아들의 요구대로 재산의 반을 주다니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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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이 돼지 돌보는 자로 전락하여 그 쥐엄열매를 얻어먹고자 했으나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 그런 죄인은 더럽고 불결한 돼지나 치며 쥐엄열매도 구하지 못하는 그런 대우도 족하지!”

 

역시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죄인을 패역한 행동을 참지 않으시는 분이죠.”

 

둘째 아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품꾼의 하나로 아버지께 돌아가기를 다짐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은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 그 놈은 더 이상 아들이 아니야. 먼저 스스로 그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 누구인데?”

 

그래도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는 잘 알고 있네! 그것이 죄인이 가져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이지. 그렇지.”

 

그리고 그 녀석이 집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책망과 율법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죄인은 마땅히 그 죗값을 치러야 하죠.”

 

옆에서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새리들과 죄인들은 계속 표정이 어둡기만 했습니다. 옆에서 맞장구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나도 초라하게만 느껴졌겠죠.

 

이윽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버지의 책망과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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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거리에서 아들을 먼저 보고는 즉시 달려 나갔습니다.

 

매일같이 혹 오늘은 오지 않을까 마을 밖을 서성이며 저 먼 허공을 바라보곤 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흠칫 놀란 뒤에는 실망의 연속이었겠죠.

 

그런 그가 오늘은 멀리에서 보이는 아들을 보고는 감격에 차서 달려 나갑니다.

 

아들아... 내 아들아...”

 

그리고는 둘째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허름하고 독한 냄새가 나는 아들의 차림새가 곱게 차려입은 아버지의 옷차림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볼에 얼굴을 맞대고 눈물을 흘리며 그저 아들의 이름을 부를 뿐,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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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에게 마땅히 내려져야 할 벌을 내리겠지요?”

 

예수님은 그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실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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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말,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으니 종으로 삼아달라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는 뒤따라오는 집안의 종들에게 소리치며 명했습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가장 좋은 옷을 가져와 내 아들에게 입히거라!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당장 가서 살진 송아지를 한 마리 잡아오너라! 오늘은 먹고 마시고 마음껏 즐거워하라!”

 

오늘 나의 아들이 죽었다 살아났구나! 내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구나!”

 

그리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즐거워하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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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꿀먹은 벙어리가 된 듯,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이건 옳은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죄인에게 잔치를 열어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부모의 재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그 연줄을 끊어버린 패역한 자식에게 왜 이런 대접을 해주는 겁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이야기의 초점을 첫째 아들로 옮겨가십니다.

 

여기서부터가 바로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전하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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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들은 일터에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집 안에서 갑자기 음악 소리와 시끄러운 잔치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종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무슨 일이냐?”

 

종은 기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기뻐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분노가 가득합니다. 마치 죄인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예수님에게 화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말이죠..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거부합니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와 첫째 아들에게 물었죠.

 

아들아, 어찌 집으로 들어와 함께 즐기고 먹고 마시지 않는 것이냐?”

 

아들은 대답합니다.

 

아버지!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섬기며 명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작은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잡아서 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축제를 열어주시거나 하신 적이 없잖아요. 저 빌어먹을 자식은 아버지의 살림을 반 토막 내먹고는, 창녀들에가 가져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저런 자식을 위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축제를 열다니 이게 무슨 상황인겁니까?

 

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야기를 듣다가 첫째 아들의 주장에 동조하며 이야기합니다.

 

옳습니다!! 첫째 아들은 억울할 만도 하죠.”

 

첫째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고 둘째 아들에게는 벌을 내림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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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아버지의 대답을 말씀하십니다.

 

아들아 너는 나의 모든 것이 바로 너의 것이지 않느냐? 너는 가장으로 나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고, 집안에는 모든 권한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는 부족하더냐?”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저런 자식이 아니라 너의 동생이다. 너의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잃어버렸다가 되찾았다. 지금 너의 올바른 반응은 아들을 책망하고 그에게 벌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지, 그게 무슨 말이더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 너희의 올바른 반응은, 이 새리와 죄인들의 이름이 함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고 이들을 나에게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은혜를 입은 그들은 다른 이방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저 특권에만 관심이 있던 첫째 아들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첫째 아들인 유대인도, 둘째 아들인 이방인도 모두 똑같이 사랑하시고, 특별히 첫째 아들에게는 속 못 차리는 둘째를 잘 타이르고 함께 집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물론 둘째 아들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혹시 여기에서 아직 구원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첫째 아들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시렵니까?

 

그리고 만일 아직 돌아오지 않은 셋째 아들이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에 대해서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지금도 잃어버린 모든 자녀들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