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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37] 기복주의 신앙?? 그게 한국교회 좀먹는 사고방식 아니오? - 복이 넘치는 이삭의 생애 이야기 (창세기 26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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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37] 기복주의 신앙?? 그게 한국교회 좀먹는 사고방식 아니오? - 복이 넘치는 이삭의 생애 이야기 (창세기 26장)

빚진자TV 2023. 1. 16. 02:13

https://youtu.be/PyflTOb-oO4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고 아브라함은 1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 먼저 등장하고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 거래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성경에 기록된 나이를 통해 계산을 해보면, 시간적으로는 야곱과 에서의 탄생 이후 아브라함은 세상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창세기 257-10)

 

그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부족했던 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조상으로서 훈련되어 가기까지,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많은 신앙적 교훈을 얻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그 모든 삶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며, 하나님이 그를 성장시키셨듯 우리도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변화를 받아 성화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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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 거래사건에 이어 오늘 우리가 묵상할 성경 이야기는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62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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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죽고, 브엘라해로이에서 거주하던 이삭은 그 땅에 흉년을 만나게 됩니다.

 

이삭은 그랄의 왕 아비멜렉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이주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삭, 너는 애굽, 이집트 땅으로 기근을 피해 내려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에서 살아야 한다.”

 

과거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방에 기근이 왔을 때 이집트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떠나 이집트 땅으로 기근을 피해 이동할 때, 그것이 좋은 결정이었는지 하나님께 물어보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 내용이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이었죠.

 

하지만 오늘 이삭에게 하나님은 이집트로 기근을 피해 내려가지 말라고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삭은 그 말씀에 순종했죠.

 

이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내용을 말씀하시며 이삭에게 그 축복을 주겠다고 재차 약속하십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26:3-4)

 

이삭은 그랄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만,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고대시대에는 자신이 익숙하게 살아가던 곳을 떠나 낯선 땅으로 이주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나의 친족들,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아무 연고도, 의지할 곳도 없는 이방인들로 가득 찬 곳으로 이동한다는 건, 굉장히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에 이삭은 아브라함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랄 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내인 리브가를 자신의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속이며 살아가기로 결정합니다.

 

낯선 땅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두고 있다는 건,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기도 하죠.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고대사회의 세계는 현대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고 잔인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비록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는 이삭이지만, 동시에 한없이 연약하고도 인간적인 이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랄 땅의 왕 아비멜렉은 창 밖으로 이삭이 리브가를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이삭, 그대가 리브가를 그대의 누이라 하지 않았소? 왜 그랬던 것이요?”

 

이삭은 대답했습니다.

 

그랄의 왕 아비멜렉이여, 만일 내가 이곳에서 살며 이 아름다운 여인 리브가가 나의 아내라고 한다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리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말은 그랄 지역 블레셋 족속을 통치하는 왕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라는 칭호와 비슷한 개념이죠.

 

이 땅에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사람들을 속여 과거의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삼으려 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 아비멜렉과 그랄 땅에는 하나님의 경고가 내려졌고, 아비멜렉의 모든 여인들의 태가 닫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는 사건도 발생하게 되었죠.

 

이에 그 때의 아비멜렉은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고,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해줌으로써 그 땅에 내려진 불행한 사건들도 마무리되었던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이삭과 대화를 하고 있는 지금의 아비멜렉도 그 내용을 아주 잘 알고 있겠지요.

 

그리고 아비멜렉은 자신이 다스리는 땅을 평화롭게 통치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이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라 속이는 이 사건은 아비멜렉에 있어서 굉장히 예민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누군가가 리브가를 아내로 삼으려 했더라면, 그 땅에는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경고가 또다시 내려질 수도 있는 문제였죠.

 

그래서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이삭, 어찌 우리에게 이런 일을 행한 것이오? 내 백성 중 누군가가 만일 리브가를 아내로 삼으려 했더라면 어찌했을 것이요? 하마터면 우리가 죄를 지을 뻔했단 말이오! 바로 당신이 우리에게 죄를 입힌 꼴이 되는 것이란 말이오!”

 

아비멜렉은 모든 백성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이 이삭에게 해를 입히거나 그의 아내 리브가를 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과거의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이야기처럼, 지금의 아비멜렉과 이삭의 이야기가 비슷한 진행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삭은 이렇게 안전하게 그 땅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셔서 그 땅에서 거부가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는 이삭을 그 땅의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며 질투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들은 과거 아브라함 때에 그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흙으로 막고 메워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그 땅을 떠나주기를 부탁합니다.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 평화를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편이기도 했겠죠.

 

결국 이삭은 그곳을 떠나 우물을 다시 팠지만, 이후 두 번이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해로 인해 또다시 거주지를 옮기며 새로 우물을 파내야 했습니다.

 

나중에야 브엘세바로 돌아온 이삭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은 이 브엘세바에서 풍족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에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다는 기록이 성경에서 자주 등장합니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우물을 판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특히나 그렇게 수고와 인내를 들이며 우물을 파낸다 하더라도 매번 물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삭의 삶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풍족하고 순탄하게 이끄셨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에는 아비멜렉이 자신의 군대 장관을 대동하여 이삭에게 와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자 맹세를 맺고자 할 만큼, 이삭의 삶은 하나님의 복이 가득했습니다.

 

낯선 땅에서 목숨이 아까워,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 속이지만, 아비멜렉을 통해 이삭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농사로 백 배의 수확을 거두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며, 이삭을 위해 일하는 종의 숫자도 많을 만큼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풍요롭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 질투로 우물이 막히더라도 새롭게 우물을 파낼 때마다 다시금 물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순탄하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왕조차도 평화조약을 맺고자 할 만큼 이삭의 세력이 크게 성장하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넘치도록 복되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본문 창세기 26장에 나오는 이삭의 생애에 관한 대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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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본문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물론 솔직히 말해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도 이렇게 풍성하고 복되고 안전하게 이끌어가신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생각하며 성경을 묵상했죠.

 

많은 사람이 오늘의 묵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삭의 순종,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물을 양보하는 성품, 열심히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노력 등의 교훈을 얻어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에서만 묵상을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분명 이 평탄하고 순탄한 이삭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깊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오늘 이삭의 생애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성경적 교훈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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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성경을 읽으며 중요한 대목이라 판단되는 몇 개의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기근을 만나 애굽이 아닌 가나안 땅에 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26:5)

 

또한 이삭이 여러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최종적으로 브엘세바에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약속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26:24)

 

마치 지금 이삭에게 내려지는 많은 복은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받게 됩니다.

 

어쩌면 이삭의 형통하고 풍족하며 순탄한 삶은 우물을 양보할 정도의 인자한 이삭의 성품이나, 그랄 땅에서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며 재산을 축적한 이삭의 노력으로 인한 결과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저는 여기에서 교회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기복주의적인 내용의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우리 자식들이 큰 복을 받게 될 거라는 내용의 메시지이죠.

 

그럼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가 얻을 성경적 교훈은 그저 기복주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후대의 복을 바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가르침이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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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기복주의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잘 벌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죠.

 

많은 사람이 이런 종류의 메시지에 대해서 부정적 입장을 보입니다.

 

저 역시도 일단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메시지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먼저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신실하고 경건하게 생활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분명 삶이 궁핍하고 힘든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죠.

 

그런 와중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면 돈을 벌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는 현실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적인 성공이 곧 영혼의 구원과 같은 선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는 논조를 띄고 있는 경우가 많죠.

 

아니 오히려 교회의 메시지가 영혼의 구원에 관한 문제보다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데에 더욱 방점을 두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설교가 되는 기복주의적 메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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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러한 기복주의적인 내용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에는, 특히나 구약성서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물질적 축복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 한국교회에서 선포되는 기복주의적인 메시지들이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고 그의 말씀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면 나의 자녀들에게까지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후대의 사람들까지도 복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약속하셨으며,

 

오늘의 본문에도 이삭에게 후대의 사람들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죠.

 

십계명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 후손들에게까지 한없는 사랑을 베푸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신 분이시며,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복 내려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다만!!!

 

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복이 과연 단순히 돈을 잘 벌고 성공하는 물질적 풍요만을 지칭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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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은 그 범주가 굉장히 넓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것도 복이지만,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복이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한 핍박을 받고, 예수의 이름을 위해 핍박받지만, 언젠가 천국의 주인이 되며 위로를 받고 땅을 기업으로 얻으며, 배부를 것이며,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의 복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성경학자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구약성경에서는 주로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성공에 관한 가시적인 내용의 복이 많이 등장하는 반면, 신약성경에서는 개인의 영성적 측면에서 영혼의 잘됨과 하나님의 아들됨, 거룩함 등의 영혼 구원에 관련된 내용이 자주 복으로서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개인적인 저의 생각을 나누자면, 결국 성경이 말하는 복의 개념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의 인생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여러 통로가 되는 수단들이라 생각합니다.

 

과거 고대시대에는 재산의 증식이나 농사의 풍년과 같이 눈으로 보이는 물질적 성공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것으로 복이 정의될 수 있었고,

 

신약시대, 특히나 현대 시대에 들어서는 점차 세상의 발달로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되어가며, 이미 세상에 넘쳐나는 물질적 성공보다는 개개인의 영성과 신앙, 인격의 성숙 등의 영적인 측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성경의 복은 단순히 어느 한 가지의 것으로서 정의되는 개념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흔히 교회에서는 거기에서 물질적 축복의 개념만을 추출해 복의 개념으로서 선포하기 때문에,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복에 대한 일부 내용만을 가져와 인용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복이라 함은 재산의 증식일 수도 있고, 사업의 형통일 수도 있으며, 자손의 번영일 수 있고, 육체의 건강일 수도 있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사람들 사이에 화평을 가져다주는 것, 마음이 청결한 것, 심령이 가난한 것, 천국의 주인이 되는 것 등의 다양한 형태를 포함합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다양한 형태의 복을 각기 다르게 받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한마디로 정리하면, 복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에게 재물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상황에서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나를 높이고 칭송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건강하고, 나의 자손들이 많아져 그들 모두가 성공하여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인생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

당신이 이룬 업적만을 높인다면,

그것은 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이런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오늘의 본문 이삭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계속 묵상을 이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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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삶의 형통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주신 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에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하신 것이죠.

 

그렇기에 아비멜렉은 이삭의 복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방 지역을 통치하는 왕조차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바로 이삭의 복된 인생이라는 점이죠.

 

하지만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형통함과 풍요로움의 이 복은 이삭 스스로의 성품이나 노력만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이 받게 될 모든 복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26:5)

 

그리고 이삭의 후손이 번성하게 될 것을 브엘세바에서 약속하실 때에는 이런 표현을 넣어 말씀하십니다.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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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사람에 대해 당사자뿐 아니라 그 후손에게까지도 복을 내려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네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신명기 28:2-4)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령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6-7)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일생을 그가 이끄시는 대로 순종한 인물이며, 이삭은 그 약속의 결과입니다.

 

그 약속의 결과는 이삭의 생애 전반에 걸친 매우 풍족하고 풍요로운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죠.

 

그것이 오늘 함께 나누었던 창세기 26장에 나온 이삭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관점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성경적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훌륭한 신앙인으로 가르치고 키워냈듯, 우리 역시도 우리 자녀들을 성경으로 교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분명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된 삶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어떤 형태의 복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자녀들과 함께하시며, 그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에 가장 좋은 형태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늘의 본문 이삭처럼 물질적 풍요로움과 삶의 평탄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삭을 보며 아비멜렉이 그러했듯, 누군가는 그의 인생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산상수훈의 8가지 복의 형태의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삭을 보며 아비멜렉이 그러했듯, 누군가는 그의 인생을 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나와 나의 후손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하고 값진 인생은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우리 자녀들을 성경으로 가르치는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그럼 분명 우리의 삶도, 우리 자녀들의 삶도 이삭처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복된 삶이 될 것이라는 그 약속을 굳게 믿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