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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32] 그가 기꺼이 자신의 자식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 -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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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32] 그가 기꺼이 자신의 자식을 바칠 수 있었던 이유 -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 이야기

빚진자TV 2022. 1. 23. 19:34

https://youtu.be/2BSF8s8IEzg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은 후,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을 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그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죠.

 

오늘의 이야기는 사실 예전 다섯 번째 묵상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는 오늘 아브라함의 시험이 갖는 의미와 과연 하나님이 인신 제사를 기뻐하실까에 대해서도 묵상을 나누었죠.

 

관련된 내용으로 다섯 번째 묵상 영상을 시청해주신다면 더욱 풍성한 말씀 나눔이 되리라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바치려 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묵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함께 나누실 성경 말씀은 창세기 221절과 2절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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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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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며 구원을 받게 될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내용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구원받은 백성은 생계와 목숨을 위협받는 박해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 인내의 믿음은 결코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내용이었죠.

 

이 내용으로 저의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만약 누군가가 저를 인질로 잡고 예수를 부인하라고 강요하는 종교적 박해의 상황이 온다면, 그 때에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신앙을 포기하지 말아달라 이야기했죠.

 

아내는 왜 하필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예시로 들어가며 말하냐고 화를 내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함께 예수님을 포기하지 말자는 이야기로 결론을 짓고는 서로를 위로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희에게도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뒤 어느 날, 우리는 그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아이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서 종교적인 박해와 핍박을 우리에게 준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 모두 결단코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선뜻 기꺼이 대답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만일 신앙을 선택한다면, 아이는 도리어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혹은 도리어 아이를 위해서 우리가 신앙을 포기하진 않을까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오늘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가서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저와 저의 아내가 함께했던 그 고민이 과연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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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두 종은 굉장히 먼 거리를 이동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땅으로 가는 길은 3일이 걸렸습니다.

 

모리아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내가 아이와 함께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이삭에게는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지고 자신을 따라오게 합니다.

 

길을 가며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습니다만,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대답했습니다.

 

"아들아, 번제 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그리고 둘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장소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았습니다.

 

그 뒤,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박하고 칼로 이삭을 찔러 죽이려 합니다.

 

그때,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의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은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너의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그 이야기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고, 아브라함은 그 양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한번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2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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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삭을 기꺼이 하나님께 번제로 바칠 수 있었을까요?

 

왜 저희 부부는 종교박해와 핍박의 상황에서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신앙을 더 우선시할 것이라 선뜻 이야기하기를 망설였을까요?

 

아브라함과 저희 부부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의 묵상은 바로 이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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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이삭이 모리아에서 제물로 바쳐졌을 때의 나이를 대부분 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20대 이상의 나이로 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삭의 나이를 25세로 추정하고, 야살의 책에서는 30세에 가까운 나이로 봅니다.

 

또한 기록과는 별개로 모리아 땅을 향해 사흘 길을 갈 수 있는 체력과 제단에 사용될 나무를 가지고 산을 오를 수 있는 신체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나이는 100세 이상의 매우 늙은 나이었죠.

 

즉 이삭이 제물로 바쳐질 당시, 이삭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능력이 갖춰진 때였고, 마음만 먹으면 아브라함에게 저항하여 그 결박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순순히 자신이 제물로 바쳐질 상황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앞서 언급된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서는 더 확실히 그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리아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거기에서 이삭은 말합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의 결정을 무시하고 두 분의 선하신 뜻에 따르기를 거절해 버릴 몸이라면, 처음부터 이 세상에 태어날 가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일을 비록 아버지 혼자 결정했다 할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식된 도리를 다한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다른 기록에서는 이런 대화도 등장합니다.

 

"이삭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되, 제가 움직이지 않도록, 칼이 제 육체 위에 임할 때 벗어나지 않도록, 그리하여 번제 예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저를 단단히 묶으소서. 그리고 저를 제단 위에 올려놓으소서 하니 아브라함이 그렇게 행하였다." (야살의 책 23:61)

 

어떻게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런 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요?

 

만일 어떤 악한 누군가가 저희 부부의 신앙을 시험하면서 소중한 우리의 아이를 붙들고 목숨을 위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협박한다고 했을 때, 우리 아이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온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지만 자랑스럽고 대견할까요?

 

"어머니, 아버지.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마세요. 오히려 저는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되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그러니 부디 부모님의 신앙을 져버리지 마세요. 부탁드릴게요."

 

과연 저희 부부는 아이를 어떻게 그런 아이로 키워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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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다섯 번째 묵상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아브라함은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나눈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더라도, 하나님은 소중한 아들인 이삭을 부활시켜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나눴죠.

 

저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의 제단에서 그런 대화가 오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렇게 이삭을 가르쳤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 비결이라고 여겨집니다.

 

저와 저의 아내는 아직 이 부활신앙을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은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선뜻 쉽게 아이의 목숨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이가 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것이 아브라함과 저희 부부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삭은 충분히 아브라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기꺼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사에 순종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자녀들에게 부활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인에게 있어 고난 중에 한 줄기 희망과도 같습니다.

 

선대의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박해를 이겨내왔고, 그 훌륭한 신앙을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물려받은 믿음의 유산을 소중히 간직하고 우리의 후대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마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먼저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을 믿는 만큼, 우리 역시도 죽음 이후의 부활이 있을 것을 믿으며 희망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부활을 믿지 않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15장의 가르침을 전하며 말했습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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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자녀들에게 부활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니 그 전에, 우리가 먼저 부활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자녀들을 신앙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언젠가 핍박과 환란과 고난의 시간이 다가올 때,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따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을 때, 죽음보다도 더 큰 무언가가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죽음을 이겨내며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죽음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이기는 신앙을 가지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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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회에서도 우리 믿는 신앙인들이 육신의 죽음 이후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본질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말하는 이에게, '종교심이 과하다', ‘메세지가 너무 강하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성경은 부활에 대해서 말하며, 육신의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님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죽음에서 먼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부활의 소망이 되어주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모리아 산에서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대화가,

 

바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신앙의 수준이 되어 끝까지 부활신앙을 믿고 예수님만 바라보는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가기를 원하며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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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만들어낸 픽션입니다.)

 

아브라함 : 나의 아들 이삭아...

 

이삭 : 네 아버지...

 

아브라함 : 저기 저 산에 보이는 불기둥과 구름들이 보이느냐?

 

이삭 : 네 아버지... 제가 불기둥과 구름을 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구름 위에 보입니다.

 

아브라함 : 하나님께서 어린 양 대신에 온전한 번제 예물로 나의 아들 너를 선택하셨단다.

 

이삭 :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을 제가 기쁨으로 행하겠습니다.

 

아브라함 : 혹시라도 너의 마음에 이것이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거나 다른 의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나에게 말해주거라. 그런 마음이 있다면 나에게 숨기지 말아다오.

 

이삭 : 아버지, 여호와께서 살아계시고 아버지의 영혼이 살아있는 한, 하나님이 아버지께 하신 말씀에서부터 저 자신을 좌로나 우로나 벗어나게 할 생각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 일에 대해서 즐겁고 기쁩니다. 오늘날 여호와 앞에 제가 번제 예물로 선택되었다는 것으로 인해, 저는 여호와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제단을 다 세우는 일을 마치기까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이삭은 돌과 제단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이제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어 구속하려 한다.

 

이삭 : 아버지, 제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행여 아버지가 그 칼로 저를 내리치실 때 제가 벗어나 예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주세요. 그리고 저를 제단 위에 올려 놓아주세요.

 

이삭을 결박하고 그의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염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하던 그 때,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왔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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