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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24] 아름다운 약속이 그대로 아름답기 위해, 당신의 올바른 노력을 더해주세요 - 이스마엘의 탄생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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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24] 아름다운 약속이 그대로 아름답기 위해, 당신의 올바른 노력을 더해주세요 - 이스마엘의 탄생 이야기

빚진자TV 2021. 5. 23. 18:51

https://youtu.be/xRC2eZDJbdU

 

지난 롯을 구한 아브람 이야기 이후, 하나님은 쪼갠 고기 사이의 횃불 언약을 통해서 아브람에게 자식을 줄 것이라는 재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때에도 아브람은 자신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큰 민족을 이루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아직 완전한 확신을 가지진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나요? 저는 자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상속자는 저의 집에서 길린 사람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로 하겠습니다." (15:2)

 

아브람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의 괴리감에 갈등을 느끼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등에 대해서 자신만의 나름의 해결책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되리라."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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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것과, 눈 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아브람도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눈앞의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며 마음속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나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다." 라는 약속과 "나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다." 라는 현실이 그것이었죠.

 

아브람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오늘의 묵상은 창세기 161절에서 2절입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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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람은 눈 앞의 현실을 보며 괴리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분명 아브람으로부터 태어나는 자식으로 그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오늘의 본문에서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는 출산을 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16:1)

 

이미 앞서 창세기 15장에서도 보았듯, 아브람은 이런 약속과 현실의 괴리상황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집에서 길러온 다메섹 사람인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지명하는 것이었죠. (15:2)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의 말을 단번에 부정하시며,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5:4)

 

그러니 아브람의 마음은 지금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하나님이 분명 나의 자식을 통해서 역사를 이뤄가시고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는 약속하셨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 사래를 통해서 자식을 보리라는 기대는 하기가 어렵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의 연속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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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내는 결혼하기 훨씬도 이전에 저를 만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려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브람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저의 아내는 함께 결혼생활을 하며 가정을 이뤄갈 준비된 남편을 기도제목으로, 오랜 시간을 간절히 기도해왔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젊은 자매 청년의 마음에 얼마나 설렘이 가득했었을까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며, 기도의 응답이 전혀 없는 듯 느껴질 무렵부터는 점차 마음이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저를 만나게 된 지금에야,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준비해주시는 시간이었음을 알고, 이제는 감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지금 돌아보면 그 기다림이 한낱 추억으로 느껴지겠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던지를 이야기하며

 

아브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도 이야기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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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기다림의 시간 중에는 어떤 제안도 달콤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 때의 제 아내에게 어떤 다른 교회의 형제를 소개해준다고 이야기를 건넸더라면 어땠을까요?

 

'바로 기도의 응답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서지 않았을까요?

 

누구에게나 그런 기다림의 간절함 속에 찾아온 이 한마디는, 정말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라도 말이죠.

 

배우자에 대한 기도를 하며 간절히 자신의 짝을 기다리는 한 자매가 우연히 저녁 늦은 시간 회사의 회식자리를 늦게까지 가지던 중,

 

이제 막 술집에서 나온 어떤 한 낯선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연락처를 달라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때마침 주변의 회사 동료들은 상황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며 당장 연락처를 주라고 이야기합니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이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남자는 외모도 나쁘지 않고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도 예의가 있어보여 매너있어 보이기까지 했죠.

 

머리도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고, 눈썹도 다듬어져있었으며, 깔끔한 옷차림에 매너있는 말투, 게다가 적당한 키에 준수한 외모까지...

 

때마침 배우자에 대한 기도를 열심히 하던 중, 아무 응답의 소식이 없어 답답하고 초조해하던 중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남자.

 

어쩌면 이것이 기도의 응답일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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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도 이런 답답함과 초조함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봅니다.

 

내가 간절히 기도하던 것과 현실의 상황이 너무나도 달라 괴리감을 느끼고, 거기에서 오는 답답함과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물론 열심히 기도만 하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만사가 아님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언제나 이전 묵상에서도 나눠왔듯 아무 실행이 없는 기도가 전부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나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나눠왔었죠.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와, 롯을 구한 아브람의 이야기 묵상에서도 그렇게 나눴습니다.

 

물론 아브람도 사래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식을 갖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노력이 계속되고 열심히 기도하며 기다리더라도 아무 응답이 없으니, 마음이 힘들기도 했겠죠.

 

이 때, 사래가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아브람도 그 제안에 솔깃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출산을 허락하시지 않으시는군요. 아브람. 내 여종 하갈의 몸을 빌려 자식을 얻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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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 중에는 어떤 제안도 달콤하게 느껴진다고 앞서 이야기했죠?

 

아브람에게는 이 제안이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혹 이것이 기도와 기다림의 응답은 아닐까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생각해보니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하나님의 약속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기도 합니다.

 

만일 아브람이 사래의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또한 아브람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 원하는 바를 간절히 기도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하는 노력과는 다른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아브람과 사래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의 노력은,

끊임없이 약속된 아이를 갖기 위해 둘이서 서로 사랑하며 노력하는 것이지,

다른 여자의 몸을 빌려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여종인 하갈을 통해 아이를 갖는 것은

흡사 배우자 기도를 간절히 하는 자매가 남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문란한 장소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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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나의 믿음과 신념에 따라서, 내가 굳게 믿는 약속을 따라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직접 행동으로 나서 세상을 바꿔가는 용기와 결단도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나에게 허용된 행동의 선 안에서, 정당한 방법으로만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 이상의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처사이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자식으로 큰 민족을 이루시리라는 것이 아름다운 꿈이라 하여,

자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자식을 갖는 것이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듯 말이죠.

 

, 한 자매가 형제를 만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정을이루어가는 것이 아름다운 꿈이라 하여,

아무 남자나 쉽게 만나서 이성적인 만남을 이어가고자 하는 것이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듯 말이죠.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꿈이라 하여,

모든 사람들을 결박해 강제로 교회에 끌고 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강요하는 것은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듯 말이죠.

 

아름다운 약속과 아름다운 꿈은, 허용된 행동의 선과 정당한 방법을 넘어서서 실행될 때에,

반드시 더 이상은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맙니다.

 

아브람은 자신에게 허용된 행동의 선과 정당한 방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약속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 아름다웠던 하나님의 약속은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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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처가 아이를 가질 수 없을 때,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갖게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본처의 자식으로 삼는 것은 당시 고대사회의 흔한 풍습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왕과 왕후 사이에 자식이 없을 경우, 후궁의 자식을 통해 왕자를 삼고, 자식과 후궁의 모자관계는 끊어지고 그 아이는 왕후의 아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흔하게 이루어지던 이 풍습이 아브람에게는 왜 적용될 수 없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성경적으로 하나님은 창조의 원리로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온전히 한 몸을 이루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시며, 일부다처제의 경우 하나님이 그리 달갑게 권면하시는 사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 세상의 방법과 풍습을 동원했습니다.

 

두 번째로, 만일 하나님이 여종을 통해 자식을 갖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실 것이라 하더라도, 아브람은 사래의 제안을 듣고 나서 하나님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단 한 차례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고자 했을 때는 하나님께 여쭤봤던 것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뜻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후세의 사람들이 이 상황을 보며 과연 여종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의 계보가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약속의 계보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늙은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시리라 약속하신 이는 기적의 하나님이신데, 본처의 몸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없으니 여종의 자식으로 계보를 이어가는 것이 과연 기적의 하나님의 이름에 걸맞는 상황인가요?

이는 후대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으며, 그러니 여종인 하갈의 아들은 약속의 자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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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의 여종인 하갈이 결국 아브람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자신의 주인인 사래를 멸시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요?

 

"마님은 주인님 아이를 갖지도 못하시면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많으시네요... 저는 주인님의 아이를 가진 사람인데 말이죠. 제가 그 시키신 일을 하다가 주인님의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성경에는 사래가 하갈의 멸시를 통해서 "모욕감"을 느꼈을 정도라 하니, 이 정도 수위의 이야기는 나와 줘야 맞지 않을까요?

 

사래는 아브람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아브람은 그저 방관합니다.

 

"사래 당신의 여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는게 맞겠죠?" (16:6)

 

결국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게 되고 하갈은 사래의 학대를 피해 임신한 몸을 이끌고 도망을 갑니다.

 

하갈이 도망가던 중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되죠.

 

여호와의 사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갈이 대답했죠.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해서 도망가는 중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네 자손은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셀 수 없게 하리라.

아들을 낳게 되리니 이름은 이스마엘이라고 하라. 이는 하나님이 너의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결국 하갈은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후에 이스마엘은 오늘날 아랍권의 조상으로 여겨집니다.

 

성경에 예언되었던 대로, 아브람의 다른 후손들과는 많은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식을 얻기 위한 아브람과 사래의 선택은, 결국 원하던 자식은 얻지도 못하고, 본처와 여종 사이의 갈등과 분쟁만이 남아 상처가 가득한 경험을 만들고 말았으며,

 

그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서로의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분쟁을 계속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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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지금 여러분이 꿈꾸는 아름다운 이상이나 굳게 붙들고 있는 아름다운 약속을 가지고 계신가요?

 

하지만 그것이 눈 앞의 현실과 다른 경우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십니까?

 

나에게 허용되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선 안에서, 그것을 이뤄가기 위한 아름다운 용기의 결단과 행동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에게 허용되고 내가 해서는 안 되는 노력의 선을 넘어가, 그것을 이뤄가기 위한 아름답지 못한 행동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약속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계십니까?

 

좋은 것을 꿈꾸고 실행한다고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꿈의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좋은 실행은 바로 그 허용되는 선을 잘 구분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은 어디까지인지 언제나 기도하며 하나님께 묻고, 성경을 보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기준을 잡아가는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