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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21] 생계와 삶을 위해 잠시 신앙을 내려놓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애굽으로 간 아브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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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21] 생계와 삶을 위해 잠시 신앙을 내려놓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애굽으로 간 아브람

빚진자TV 2021. 2. 16. 20:08

https://youtu.be/csiAEjRvPiI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2: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2: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2: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2: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2: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2: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2: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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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첫걸음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에 도착해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민족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놀라운 계획은 지금 아브람이 밟고 있는 땅, 바로 가나안 지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곧 머지않아 약속의 땅에는 기근이 닥쳐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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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약속의 땅에 다다른 곳에는 행복한 삶, 기쁜 나날만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간혹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인생이 언제나 행복의 연속일 것이라 기대하시는 성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다면 구원에 관한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이고 앞으로의 인생은 승승장구 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길을 나선 그곳에는 고난이 함께하고,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으면, 예수님 믿으면 거기서 다 끝난 것 아닌가요?”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물론 언젠가 우리 모두는 저 영화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온전히 영화로운 모습에 다다를 때까지, 이 땅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기근이 올 수도 있습니다.

 

마치 아브람이 약속의 땅에 다다를 때에, 기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었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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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우리의 앞에 놓인 삶이 고난과 훈련이 연속되는 삶이라면 어떤 인생을 살아야 마땅한 것일까요?

 

답은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바로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그 고난의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은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바로 애굽으로 기근을 피해 하나님이 거하라 명하신 땅을 떠나간 것입니다.

 

경제적 문제와 생계의 문제가 아브람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죠.

 

우리는 지금 창세기 12장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지만, 아브람은 아직까진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브람이 좀 더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죠.

 

아브람이 위대한 것은, 그 믿음이 처음부터 온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이 먼저 택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훈련시키신 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연약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브람을 책망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경제적인 문제와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 앞에서는 연약해지는 인간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조금은 포기하고, 생계의 여유를 위해 기독교인으로서의 나의 자리를 잠시 떠나는 선택을 할 때가 있죠.

 

물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삶의 고난도 함께 이겨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지닌 우리는 매일같이 실패하곤 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욕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우선 나와 나의 사람들부터 살고 봐야한다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진 본성이죠.

 

그러니 약속의 자리에서 조금 더 견디고 인내하며 참고 기다리기보다는, 우선 나의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그것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다 연약한 인간이니까요.

 

우리도 삶의 어려움과 경제적 고난과 같은 힘든 과정 때문에, 잠시 기독교인으로서의 자리를 떠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합시다. 언제까지고 애굽에 머물러 있어선 안됩니다.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죄의 노예로서의 삶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합니다.

 

타협의 자리, 기독교인으로 자신을 밝히기가 부끄러운 자리, 신앙을 조금은 져버리는 것이 나의 경제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머물러있지 말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의 삶으로 기필코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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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은 부유한 곳이었습니다.

 

가나안이 기근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경제적인 고난을 겪을 때, 그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죄악된 삶이 이어지는 장소였죠.

 

그 땅의 권력자는 어떤 여인이 마음에 든다면 그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데려올 수 있을 정도로 악한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아내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보기에 너무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때문에 여기 이집트 땅의 사람들이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나의 아내라 하지 말고, 나의 누이라고 합시다.”

 

이곳은 죄의 세상이며, 그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는 죄악된 삶과 타협하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아브람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맞는 말은 아닌 말로, 애굽의 사람들을 속입니다.

 

바로 자신의 아내인 사래를 애굽인들에게 자신의 누이라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아브람에겐 사래가 이복누이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결국 사래의 아름다움을 본 애굽인들은 그것을 애굽의 왕, 바로에게 보고하게 되고, 아브람은 결국 사래를 바로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바로는 아브람에게 많은 재물을 선물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마당에 그런 보물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아브람의 이야기를 들은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칭호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이 드시나요?

 

지난 묵상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아브람은 아직까지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대한 칭호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훈련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그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며 책망하는 마음이 아닌, 이런 부족한 사람이 앞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지를 중심으로 묵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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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상황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십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려온 뒤, 하나님은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원망합니다.

아브람! 당신이 어찌하여 당신의 아내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녀를 데려오게 만들었습니까?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을 행했습니까? 얼른 당신의 아내를 데려가시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많은 재물도 같이 아브람에게 전했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약속의 땅에서 떠나 애굽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람은 다른 사람과 다름없는 삶의 방식을 택합니다. 바로 타인을 속이며 살아가는 것이죠.

 

아브람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는 아브람으로 인해 누군가가 재앙을 받게 되었죠.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 자리를 떠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과 다름없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파하며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아닌, 오히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만들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결국 아브람은 애굽에서 큰 재물을 얻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데, 그건 다음 묵상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아브람은 결국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된 것이죠.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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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히브리어로 하타아(חֲטָאָ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합니다.

 

많은 신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이 단어를 과녁에서 벗어남이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화살이 마땅히 가야 할 길로 가지 않고,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회개는 히브리어로 슈브(שׁוּב), 헬라어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라고 합니다.

 

이는 돌이킴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죠.

 

길을 벗어난 존재가 다시 본래 가야할 길로 되돌아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약속의 땅과 애굽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과거 예전의 죄인의 삶 사이에서 끊임없이 길을 헤메이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다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보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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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인 된 본성에 따라 형성된 죄의 습관을 적어본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 좋지 못한 습관을 끊어내고자 노력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여러분이 그 짧은 시간에 완전히 그것들과 결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하죠..

 

저 역시도 실패의 연속이었고, 더 하나님 자녀로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공동체에서 성도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이끌어준다면 언젠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그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며, 따라서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실패하고 또 주저앉더라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죠. (성도의 견인)

 

자리를 벗어나 애굽으로 가신 분들은 이제 다시 가나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면 됩니다.

 

매일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죄와 싸우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611-23

이와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 있다고 여기십시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악한 욕망에 따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은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죄의 도구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몸을 정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가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자신을 바쳐 복종하면 그의 종이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죄의 종이 되면 죽음에 이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이 되면 의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전에 죄의 종이었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므로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본래 자아가 연약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쉬운 말로 설명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부정과 불법을 위해 여러분의 몸을 죄의 종으로 드린 것처럼 이제는 여러분의 몸을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하게 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얻은 유익이 무엇입니까? 지금 여러분이 부끄러워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 생활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