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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22] 당신은 롯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나요? - 롯과 헤어진 아브람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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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22] 당신은 롯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나요? - 롯과 헤어진 아브람 이야기

빚진자TV 2021. 3. 2. 19:19

 

 

 

우리는 지난 아브람의 묵상을 통해 신앙인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많은 고난과 역경 훈련이 기다리는 삶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나안으로 간 아브람에게 주어진 첫 번째 숙제는 바로 기근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었습니다.

 

아마 아브람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가나안에 정착하여, 기근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각오가 되었는가?

 

하지만 아브람은 아직까진 경제적 고난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 큰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경제적 고난과 생계의 문제가 닥쳐왔을 때, 애굽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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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애굽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간의 경험은 아브람을 더 성장시키기에 충분했죠.

 

아브람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 한 일은 바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13: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지난 애굽에서의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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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브람에게는 두 번째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부유함이 손에 들어왔을 때, 이로 인해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브람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오늘의 묵상 말씀은 창세기 136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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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은 정말 많은 재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애굽, 이집트 땅에서 나오면서 애굽의 왕 바로가 그에게 많은 재물을 건네줬기 때문이죠.

 

여기에는 많은 가축들과 인적 자원이 되는 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해집니다.

 

오늘 성경에서도 아브람에게 가축과 금과 은이 풍부했다고 말합니다. (13:2)

 

하지만 너무 많은 가축들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니, 아브람의 가축을 돌보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돌보는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가축의 수는 너무나도 많은데, 목초지가 부족해서 서로 자신의 가축을 먹이기 위해서 다툼이 잦은 것이었죠.

 

게다가 가나안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브람과 롯은 외지로부터 온 타국인, 나그네의 입장입니다.

 

이런 모습이 계속되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게다가 그들이 가진 많은 가축이 이곳 가나안의 사람들에게까지 피해 입힌다면, 당장 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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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재물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재물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그 재물을 맡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극적인 예로, 로또와 같은 복권에 당첨되어 갑작스럽게 재산이 불어난 경우가 있지요.

 

이런 사람들의 삶의 결과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브람과 롯이 이 큰 재물을 허랑방탕하게 사용하며 낭비하는 사람들은 아니지요.

 

저는 그저 감당할 수 없는 재물이 저주가 되는 극단적인 예시를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다만 아브람과 롯은 애굽으로부터 너무 많은 가축을 얻어왔습니다.

 

땅이 그들의 소유를 다 허락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였으니, 이는 목초지가 부족한 탓이었지, 아브람과 롯의 재물관리 능력의 부족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브람과 롯에게 주어진 이 가축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재물임은 명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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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생각했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며, 하나님이 다른 명령이 있지 않다면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분란을 일으켜 가나안 사람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

 

이에 아브람은 자신이 생각한 문제의 해결책을 롯에게 전합니다.

 

나의 조카 롯, 지금 나의 목자들과 너의 목자들이 가축을 먹이기 위해 좁은 목초지를 두고 서로 싸우는 모습이 나는 너무 가슴이 아프단다. 우리는 한 친족이 아니겠니?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너와 내가 이제는 서로의 재산을 나누어 각자의 길을 가서 새로 정착할 땅을 찾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롯에게 먼저 자신이 정착할 땅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 눈을 들어서 이 넓은 세상을 바라보거라. 세상에 갈 곳이 이리 많지 않느냐? 갈 곳을 먼저 정하여 나를 떠나가려무나. 네가 어딜 가든지, 나는 너와는 같은 곳으로 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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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근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던 아브람이 이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다.

 

아브람의 이 선택은 매우 지혜롭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에 남아있을 수 있고,

다툼과 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으며,

가나안에서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로부터 밉보일 이유를 주지 않고,

아브람과 롯의 각각의 재산도 각기 지켜낼 수 있는 방안입니다.

 

기독교인의 자리를 생계의 문제를 위해 잠시 내려놓고, 세상에서 방황하던 사람이 다시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 이전과는 또 다른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라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이렇진 않습니다.

 

다시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신앙인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새롭게 직면하는 문제를 모두가 잘 헤쳐나가는 것은 아니죠.

 

바로 롯을 통해서 연약한 믿음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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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은 아브람의 조카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고향을 떠나올 때, 함께했던 인물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그 명령을 따라 길을 떠나는 것은 위대합니다.

 

가나안의 기근으로 아브람에게 주어진 첫 시련은 롯도 함께 겪은 시련입니다.

 

애굽에서의 경험도 함께했죠.

 

그리고 이제 가나안으로 돌아와 두 번째 숙제가 생겼습니다.

 

그 두 번째 숙제에 대한 해답으로 삼촌인 아브람이 자신에게 결별을 제안합니다.

 

롯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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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선택지는 둘입니다.

 

아브람과 끝까지 함께하며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느냐. 혹은 아브람의 제안대로 결별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느냐.

 

아브람과 끝까지 함께하며 약속의 땅에 남아있고자 한다면, 아브람의 제안 이외에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목자들이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서 목초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웁니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좋지 못한 인식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롯이 아브람의 제안대로 헤어질 수 없고, 끝까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이 땅을 고집해야 하겠다면,

 

그렇다면 방법은 결국 가축의 수를 줄여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가축의 수를 인위적으로 줄여 조절해하는 것이 최선이겠죠.

 

이는 바로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약속의 땅, 신앙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재산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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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은 그렇게 재산을 포기하고 약속의 땅에 남아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리라는 다짐은 하지 못했나 봅니다.

 

롯은 아브람의 제안대로 자신의 가축들과 재산을 가지고 아브람과 결별하게 됩니다.

 

결국 롯은 동쪽으로 옮겨가 결국 소돔의 땅에 들어갑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지방을 바라보고는 그 곳의 풍요로움을 보고 결정한 장소입니다.

 

성경에서 요단 온 지역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고 마치 애굽 땅과 같았다 표현하고 있으니,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소돔 땅의 사람들에 대해서 성경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라 평가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을 땐, 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갔고,

경제적 풍요로움이 생기니, 그 풍요로움을 포기하지 못해 소돔으로 갑니다.

 

결국 롯은 약속의 땅에 계속 남지 못하고 결국 세속적인 삶에 동화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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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롯을 마냥 비난하고 나무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재산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재산을 지키기 위해 부요하지만 죄악 된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하라 요구받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갈 것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롯의 선택을 너무 비난하진 맙시다. 그의 모습에서 연약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봐야합니다.

 

앞으로 아브람의 인생을 살펴보며 롯의 인생도 다시 등장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만, 앞으로는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지 후에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처럼 연약한 사람이라 해서, 그의 잘못된 선택을 우리가 따라가도 문제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렇게도 적나라하게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에 대하여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실수를 보고 묵상하며, 우리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게 하려는 의도이지,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우리나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니, 우리도 그런 실수를 되풀이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보여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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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롯과 결별하고 난 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한 번 약속하십니다.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3:14-17)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거주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어찌 보면, 롯과 헤어진 아브람은 이 사건을 통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제 더 온전히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의지하던 유일한 혈육과의 이별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겠죠.

 

특히나 롯은 아브람에게 있어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전해집니다.

 

믿고 의지하던 서로를 등지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선택의 아픔은 아브람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이 의지할 인간은 없습니다.

 

아브람에게 있어 이제 누구보다도 더 의지하고 함께하게 될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이사야서 41장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41:8)

(아브라함은 아브람이 나중에 새로 하나님께 받게 될 이름입니다.)

 

성경을 통틀어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언급하시면서, 하나님의 친구라 일컬음 받는 인물은 거의 없습니다.

 

나의 벗 아브라함”....

 

그것은 혈육으로 이어진 그 누구보다도, 믿음과 끈끈한 가족애 이상의 애정이 있던 인간보다도 더욱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아브람이었기에 주어질 수 있는 칭호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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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브람도 실수가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수 뒤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온 이후에는 다시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롯은 애굽에서 돌아온 뒤, 또다시 소돔 땅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만일 제가 그런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저 역시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롯에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 지는 함께 묵상을 이어가며 두고 볼 일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저의 인생이 그의 발자취는 따르진 않길 바래봅니다.

 

자신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롯의 부족한 모습과 연약한 믿음에서, 자꾸 저의 모습이 겹쳐 보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마음속에서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기는, 제가 롯의 발자취가 아닌, 아브람의 발자취를 따라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