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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01] 오해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순결한 자 - 삭개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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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01] 오해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순결한 자 - 삭개오

빚진자TV 2020. 6. 3. 11:35

 

 
앞으로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서 개인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성경을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묵상의 내용은 삭개오 이야기입니다.
 
눅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의 묵상은 모든 기독교인이 잘 알고 있는 삭개오의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로마는 지배하던 나라에 대해서 세금을 걷을 때에 중앙정부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어 세금을 계산하고 걷어간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 살고 있었던 현지 사람을 고용해 세금걷는 일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일컬어 "세리"라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었던 유대인이긴 했지만, 그 역할은 로마에 세금을 충실히 걷어서 바쳐야 했던 사람들입니다.(정통 유대인이냐 개종한 이방인이냐에 대한 논란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로마제국은 이러한 "세리"들이 중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걷어들이던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중앙정부는 그저 정해진 세금을 제 때에 걷어들이기만 하면 되었고, 이에 따라 세리들은 중간에서 착취를 일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은 세리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이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부과된 것 이외에는 걷지 말라"(누가복음 3장 13절)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의 세리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죠.
 
매국노, 사기꾼, 착취자, 거짓말쟁이, 비열하게 돈을 모은 사람 ..
 
 
오늘 제가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세리입니다.
 
삭개오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흔히 들어왔던 삭개오의 이야기는 개과천선한 죄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였고 나쁜 사람으로 많은 재물을 착취했으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변화되어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라는 그런 이야기였죠.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볼까 합니다.
 
그간 억울했던 삭개오의 속마음, 그리고 그를 위로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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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학창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봤으면 합니다.
 
학창시절 반마다 한 명씩은 있었던 학급의 "반장" 혹은 "실장"을 떠올려봅시다.
 
선생님을 도와 원활하게 학급을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을 지닌 학생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단지 그 역할에 충실해야 했을 뿐입니다만, 초등학생 시절에는 특히나 반장들이 미웠을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떠든사람을 칠판에 적어 선생님께 알려주던 반장의 모습이었죠.
 
반장들의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어, 떠들지 않았더라도 내가 평소 미워하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칠판에 이름을 적은 반장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떠든사람에 이름을 적힌 아이들은 손들고 서있기라는 엄청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칠판에 이름을 적는 그 역할은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반장들에 대한 이 부정적인 미움의 감정은 반장이라는 "역할 그 자체에 대한 미움"으로 뒤바뀌어버리곤 했습니다.
 
그 뒤로 모든 반장들은 나쁜 녀석들... 선생님에게 빌붙어 학생들을 팔아먹는 존재로 낙인찍어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로 인해 정말로 떠든 사람들만을 성실히 적어내려가던 반장들 마저도 나쁜 녀석들로 몰아가는 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은 아닙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의 오류인지를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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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는 그러한 편견과 잘못된 사고방식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삭개오는 외로웠습니다.
 
이유는 단 두가지, 자신이 세리이며 때마침 부자였다는 이유 하나......
 
당연히 사람들은 그가 모은 재물이 부정적인 방법일 것이라 가정합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 어디에도 이 삭개오가 어떻게 재물을 모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어쩌면 부자인 부모로부터 재물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세리장 이외의 다른 부업으로 돈을 모았을 수도 있고
 
혹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듯 세리장이라는 위치를 활용해 돈을 착취했을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이러한 삭개오의 이름의 뜻이 "순결"입니다.
 
순결....
 
왜 성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가 지닌 이름의 뜻이 순결임을 밝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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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이 살고있는 여리고를 통과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앞선 사역에서 보여준 그의 기적들과 그의 가르침.. 그의 성품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병든 자를 고치신 것을..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단 것을..
 
당시 존경받던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에 대해 꾸짖으셨던 것을...
 
그 소문을 듣고 있노라니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봐주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의 위치가 아니라, 내가 가진 어떤 조건이 아니라
 
정말 순결한 자신의 내면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나와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하며 생각하고 있었겠죠.
 
만일 당대의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타인으로부터 세금을 착취해서 재물을 모으는 데에 마음을 쏟았던 사람이 삭개오의 전부였다면, 예수라는 작자가 여리고를 지나가던 말던 본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겠죠.
 
삭개오가 예수님을 정말 보고싶어했던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의 순결한 내면을 볼 수 있을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수많은 인파에 가려 예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자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에게 던져진 예수님의 한마디
 
"순결한 자야 속히 내려와라.... 내가 너의 집에 가겠다."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준 예수님이었습니다.
 
세리장, 죄인, 민족의 반역자 등, 자신이 가진 수식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예수님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죄인이라 칭하지만...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삭개오, 너 순결한 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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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으며,
 
만일 자신이 속여 착취한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값아주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그 동안의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로 해석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예수님 알고 계시죠? 저는 떳떳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타인으로부터 속여 빼앗아 모아왔다면, 이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예수님 앞에서 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미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를 위해 조건 없이 기부하고는
 
거기에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그마저 남은 반절의 재산 중에서 가져다가 네 배로 값겠다니요...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예수님도 이미 알고 혼내셔야 합니다. 어디서 허세질이냐고 하셨겠죠.
 
하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의 내면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는 사실 이름처럼 순결한 사람이었으나, 그의 직책과 상황과 그가 가진 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를 멋대로 죄인으로 낙인찍어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외로웠다는 것을...
 
그래서 혼자 앓고 있어왔다는 것을...
 
그 아픈 마음을 예수님을 어루만져주시며 선언하십니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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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용어 중에서 "언더도그마"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힘이 있는 자는 악하고, 약한 자는 선하다고 여기는 생각의 경향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삭개오와 같이 사회적으로 위치가 높고 성공하고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악한 사람일 것이라 여기는 생각의 경향이죠.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인 우리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보시는지도 배워야 하겠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삼상 16:7)
 
사람들이 언더도그마에 빠져 삭개오의 진정한 내면의 선함을 바라보지 못해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 여기며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기에....
 
사실은 양의 무리에 속하여야 할 사람이었으나 다른 양들의 시기심과 질투와 왜곡된 증오로 인해 버림받아...
 
그래서 잃어버린 양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요 10:27)
 
예수님에 대한 삭개오의 기대와, 나무 위로 올라간 삭개오의 행동은
 
그가 사실은 예수님의 양의 무리의 일원이었음을... 구원받은 백성의 무리에 속한 일원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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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에 대해서 그가 가진 위치로(술집 사장님, 믿지 않는 사람 등) 무조건 악한 사람으로만 치부하고 있진 않습니까?
 
혹은 특정 조건(가령 특히 종교인, 교사 등)이라 하여 그 사람은 무조건 청렴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진 않습니까?
 
사실은 그 사람의 내면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는 해보지도 않고 그 사람의 겉모습으로 평가하려 하진 않았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회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