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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4] 내 재능을 잘 관리해서 봉사하란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 달란트비유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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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4] 내 재능을 잘 관리해서 봉사하란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 달란트비유이야기

빚진자TV 2020. 9. 7. 20:08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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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비유로 어떤 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옛날에 어떤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 재산이 많이 있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먼 타국으로 떠나며 자신의 종들에게 자기의 재산을 맡기게 되죠.

 

종들은 각기 가진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았죠.

 

참고로 달란트는 화폐의 단위로 지금의 금 약 34kg과 맞먹는 단위라고 합니다.

 

한 달란트는 한 사람의 20년 품삯이라는 견해가 많이 있더군요.

 

오랜 후에 그 사람이 타국에서 돌아와 결산하게 되었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받았던 재산으로 장사를 해서 총 열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총 네 달란트로 만들었죠.

 

주인의 재산을 두 배로 불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종들을 칭찬합니다.

 

매우 잘했습니다. 나의 충성된 종들이여.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한 당신들이니, 내가 더 많은 일을 당신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나와 함께 즐거워합시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받았던 것을 땅에 감추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와서 결산할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당신은 혹독하고 무자비한(σκληρός,스크롤레스) 사람입니다. 당신은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불로소득을 취하고, 추수한 곡식에 키질도 하지 않는 노력으로 알곡을 모으는 사람(ὅθεν οδιεσκόρπισας, 호덴오우디에스코피사스)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주신 이 한 달란트는 땅에 묻어두었다가 이제 당신께 드립니다. 이제 당신의 것을 원금 그대로 가지셨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이런 악하고 게으른 종 같으니라고! 너는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냐? 너의 생각대로 그렇게 내가 불로소득이나 취하는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라면 마땅히 내 돈을 사채업자들에게 맡겨서 이자라도 받았어야지 않았느냐?”

 

그리고는 다른 하인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맡겨뒀던 한 달란트를 빼앗아다가 열 달란트를 만들어낸 종에게 주어라! 있는 사람은 더 있게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없게 되리라. 그리고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아버려라! 거기에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예수님이 말씀해주신 달란트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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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해주신 이 이야기를 주제로 저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한 가지 의문이 올라왔다고 말했죠.

 

자신이 없어서 원금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 한다면 오히려 손해는 안 봤으니까 잘한 일이 아닐까?”

 

저도 마찬가지로 그 질문을 듣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과연 한 달란트를 받아 숨겨놓은 그 하인은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을까요?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하고싶으셨던 말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이번 묵상의 주제를 예수님의 이 달란트 비유 이야기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묵상을 여러분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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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오늘의 본문이 교회에서 이야기가 될 때,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 즉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을 잘 활용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자는 결론으로 교훈을 얻곤 합니다.

 

실제로 저의 아내도 이런 가르침의 내용으로 이 달란트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더군요.

 

아내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청년 시절부터 반주 봉사를 통해 실력을 키워왔고, 그것을 마치 다섯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만드는 것처럼 생각해왔죠.

 

물론 이 이야기 하나만 가지고 그런 교훈을 생각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성경 묵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성경을 묵상하고 그것을 내 삶에서 행함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니깐요.

 

여러분 그런데 말이죠. 제가 아까부터 이 달란트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비유의 이야기라고 하지 않았나요?

 

과연 오늘의 이야기가 무엇을 비유한 내용이길래 아까부터 제가 자꾸 비유의 이야기라고 말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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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비유의 이야기의 그 속에는 원래 하고 싶었던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모든 성경을 다 비유로 풀어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건 당연히 비유로 봐야 맞습니다.

 

만일 제가 제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오빠의 마음은 바다야.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너의 모든 마음을 다 받아줄게.”

 

여기에서 바다와 강물은 저의 마음과 제 아내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보조관념입니다.

 

저의 마음과 아내의 마음은 제가 이야기하고 하는 원래의 것들 즉, ‘원관념이겠죠.

 

만일 여기에서 제 아내가 이렇게 되묻는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아니 요즘 강물에 얼마나 많은 오염물질이 있고 축산폐수도 많고 녹조현상도 많은데, 그럼 내 마음이 더럽다는 뜻이야?”

 

만일 제 아내가 이렇게 말한다면 저는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제가 원래 말하려던 원관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 아닌, 비유를 위해 사용한 보조관념에 집중한 나머지, 본래 하려던 말이 왜곡되어 버린 것이죠.

 

제가 하려던 말은 너의 마음은 더러워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은 바로 오빠는 너의 모든 마음을 다 받아줄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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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 이야기를 들을 때에, 보조관념으로 사용된 어떤 것에 깊이 생각의 닻을 내려 원래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해석을 가져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래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셨는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이라는 전체 성경의 맥락을 살펴봐야 합니다.

 

적어도 원금은 보존했으면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의 질문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어찌 보면 조금은 생뚱맞은 질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이 달란트 비유 이야기에서 우리가 이끌어내야 하는 진정한 교훈은 어떤 내용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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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예수님이 왜 이 비유 이야기를 하셨는지 그 앞의 맥락을 살펴봅시다.

 

먼저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이스라엘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신 뒤,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예수님!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 어느 때에 말씀하신 성전이 무너질 것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와 세상의 끝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24:3)

 

예수님은 거기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거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며 미혹할 것이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것이지만, 두려워하지 말거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대적해서,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서 일어날 것이다. 곳곳에는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으로 굶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재난의 시작이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길 것이고, 내 이름으로 인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 서로 잡아 죽이고 미워하고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며,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는 구원이 있을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있을 환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다니엘에 관하여 기록된 말씀에 대해 너희가 깨닫듯,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며,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자신의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들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가지 말라. 그 날에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가 도망하는 날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그 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이고, 세상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이런 환난은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 환난 날의 기간을 줄여주시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겠으나,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서 그 날을 감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때에 나타날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고도 함께 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어 할 수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다.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만일 사람들이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거짓 선지자들과 다르게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재림하실 것인지를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쩍이는 것처럼, 누구도 예기치 못하고 갑작스럽게 오실 것이며, 특정한 장소에 한정되어 임하시는 것도 아니고, 번개의 섬광처럼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재림하신다는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에는 어떤 사건이 있을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은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나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이며,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은 통곡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 택한 백성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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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신 비유의 원관념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이야기를 들으신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말 세상의 끝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해서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답이 떠오르시나요?

 

예수님은 다른 비유 이야기를 통해 이 이야기를 재차 해주심으로써,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삶의 태도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다시금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 보조관념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무화과나무의 비유 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주인의 이야기’, ‘주인이 없는 동안 집을 지키는 종의 이야기’,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 ‘달란트 비유 이야기’, ‘양과 염소를 나누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살펴본 달란트 비유 이야기는 이 7가지의 이야기 중에서 6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결국 예수님이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이 세상의 마지막과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기독교인들의 올바른 자세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맥락을 벗어나지 않고 오늘의 본문 달란트 비유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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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는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언젠가 다시 오실 것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다시 오십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물론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무성해지면 여름이 온 것을 알 수 있듯, 마지막 때의 징조는 일어날 것이지만, 예수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오실 것이며, 우리는 결산의 날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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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겨두신 사명을 부지런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마치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겨두고 먼 타국으로 떠나갔듯,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개개인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시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세요.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종들은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더 큰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도록 합시다.

 

우리의 사명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악하고 게을렀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결코 내팽개쳐 두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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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되지 마세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을까요?

 

그것은 주인에게 하는 그의 변명에 드러나 있습니다.

 

먼저 이 종은 주인의 성품을 악한 존재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옳은 행동이었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주인님은 불로소득을 취하며 재산을 불리는 것밖에 모르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건 옳지 않습니다. 여기 당신의 것을 원금 그대로 받으세요.”

 

그런데 이 변명은 말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주인이 불로소득을 취하는 나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종인 자신에게 재산을 맡겼다면, 나쁜 방법을 동원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히려 더 돈을 남겨야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점을 주인은 지적하며 종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너의 말대로 내가 노력 없이 수확하고자 하는 나쁜 사람이라면, 오히려 사채를 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서라도 돈을 남겼어야지, 너는 땅에만 묻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너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너는 게으른 종이 맞다. 게다가 너의 그 게으름을 변호하기 위해서 내세우는 변명이라는 것이 내가 악하다고 하는 말이니, 내가 너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언젠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하셔서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게 좋아 세상을 심판하는 거야. 그래서 난 끝까지 하나님을 안 믿을래. 하나님은 악한 신이니까.”

 

아니 정말로 하나님이 악한 신이고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한다면, 자신에게 올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말한 주인처럼, 이렇게 대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는 내가 악한 신으로,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더냐? 그러면 너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너에게 임할 심판을 벗어나기 위해 나를 더욱 믿어야 하지 않았느냐? 결국은 나를 믿기 싫어하는 너의 게으름이고, 나를 믿기 싫어하는 너의 그 게으름을 변호하기 위해 나를 악한 신으로 묘사하는 너의 태도를 보아하니,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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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달란트 이야기 이외에도 무화과나무의 비유 이야기,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 등의 모든 비유에서 우리는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모두 말세의 징조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비유임을 알고 거기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오늘의 묵상은 예수님이 세상 끝날에 대한 비유로 말씀해주신 여러 이야기 중, 단 하나의 이야기만을 다루었기 때문에 조금은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거기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세상의 끝날을 바라보며 어떤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