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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6]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 하지만.... 본문

개인 묵상 나눔

[성경묵상나눔 016] 가인에게 표를 주신 하나님.... 하지만....

빚진자TV 2020. 11. 6. 15:41

 

 

창세기 411-13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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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 참 손버릇이 나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의 돈에 손을 댄 적이 있거든요.

 

때론 동전을 모아두었던 저금통에서 조금씩 돈을 빼가 몰래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처음 느꼈던 죄책감은 잘못이 반복될수록 무뎌져만 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마다 몰래 돈을 빼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항상 문구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죠.

 

철없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돈을 가져간 것을 이미 아신 어머니는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들! 돼지저금통에 있던 돈이 없어지는 것 같은데, 혹시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있니?”

 

어린 저는 그 말이 그토록 많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지 몰랐습니다.

 

설마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신 건가?’

 

아냐 이렇게 물어보시는 건 내가 그랬다는 건 모른다는 뜻이 아닐까?’

 

그럼 나는 여기서 시치미를 뚝 떼면 이대로 아무도 모르고 지나가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어머니의 당시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아들이 돈에 손을 댄 것을 아시면서도 모른다는 듯 이렇게 물어보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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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아직도 분에 차서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동생이 죽어있고 자신의 손에는 피 묻은 돌이 들려있었죠.

 

그래도 아직까진 죄책감이 들기보다는 약간의 후련함과 다 삭히지 못한 분노가 더 마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아무도 없는 들판 한가운데, 목격자는 없습니다.

 

가인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삶으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동생, 너의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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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잘못을 이미 알고서도 모른다는 듯 물어보신 어머니.

 

자식으로부터 어떤 대답을 듣고 싶으셨기에 그렇게 물어보신 것일까요?

 

무엇이 가장 정답인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자식이 스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앞으로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죠.

 

만일 그 아들이 시치미를 떼며 이렇게 대답한다면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요?

 

난 잘 모르겠어요. 저금통에 돈이 없어진 건, 그건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이미 자식의 잘못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분명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남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인가 하는 죄책감이 올라옴과 동시에

 

믿었던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뉘우침이었건만, 배신감도 느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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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이미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릅니다. 내가 제 동생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까?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식이 시치미를 떼며 발뺌하는 그 모습을 바라본 어머니의 마음이 아프듯, 하나님도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셨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이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서 다른 사람의 탓으로 잘못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서도 같은 마음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저에게 주신 여자가 저에게 그 열매를 줬습니다. 그래서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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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저금통에서 돈을 훔친 아이의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만일 자식이 저금통에서 돈을 훔쳐 간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올바른 부모 된 사람으로서의 다음 행동일까요?

 

자식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이 부모는 자식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요?

 

어머니는 결국 아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아픈 가슴을 내려놓으며 책망하고 그 죄를 묻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정말 모를 줄 알았니? 엄마는 이미 네가 돈을 가져간 것을 잘 알고 있단다. 엄마는 네가 돈을 훔쳐 간 것으로도 모자라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단다. 엄마는 가슴이 매우 아프지만, 그래도 너의 올바른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구나. 가서 회초리를 가져오너라. 종아리를 딱 다섯 대만 맞도록 하자.”

 

아들은 지금에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지금 아들이 반드시 해야 할 말은 이것입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착한 아들이 될게요. 정말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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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땅에서부터 너의 아우의 핏소리가 나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제 땅이 너의 손으로부터 너의 아우의 피를 받았으니, 너는 땅으로부터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 네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땅은 더 이상 그 효력을 내지 않을 것이니, 너는 땅에서 피하면서 돌아다녀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가인은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제라도 죄를 뉘우치고 자백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제가 질투와 시기심에 눈이 멀어 나의 아우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죄의 값을 치러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내리신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저는 땅에서 피하고 유리하며 죄를 뉘우치며 살겠습니다.”

 

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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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를 가져오라던 어머니의 말씀에 아들은 도리어 소리칩니다.

 

아니 어머니! 저에게 체벌을 내리시려는 것입니까? 저에게 내려지는 벌이 너무 가혹합니다! 어린 저에게 이건 아동학대 아니에요?”

 

만일 아들이 이렇게 어머니에게 되묻는다면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요?

 

저도 이제 곧 아버지가 되겠지만, 만일 제 자식이 그런다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듯 아플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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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바로 그랬습니다.

 

가인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잘못했다 고백하는 내용이나 죄를 뉘우친다는 내용이 이후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이렇게 대답할 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벌이 너무 가혹합니다. 농사를 짓는 저에게 땅의 저주를 받고, 땅을 유리하며 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가혹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받게 될 처벌에만 이야기의 초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내리신 벌로 인하여 자신이 살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내리신 벌은 타인에 의한 죽음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하나님이 가인에게 내리신 벌은 땅의 저주를 받는 것이고, 땅에서 유리하며 사는 자가 되는 것이었지, 그 이상의 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그 어떤 다른 사람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보호하십니다. 죄에 대한 심판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볼 수 있는 장면이죠.

 

다른 한 편으로, 가인은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벌을 달게 받으며 살아가다 언제라도 그 죄를 뉘우치고 회개 할 수도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죠.

 

죄를 지은 자식이지만 여전히 그 사랑하는 자녀인 것처럼, 하나님은 참고 참고 또 참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후, 벌을 내리신 뒤에는,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것처럼,

 

가인이 죄를 짓고 난 뒤, 벌을 내린 뒤에는, 하나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사 보호하시며 다시 기회를 주신 것처럼,

 

자식이 잘못을 저지른 후에, 회초리를 때리고 난 뒤에는, 정성스레 종아리에 상처약을 발라주시던 어머니처럼,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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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가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벌을 달게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인을 닮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러길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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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은 에덴의 동쪽에 있는 놋 땅에서 성읍을 쌓고 정착하며 살아갑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창세기 416-17)

 

성을 쌓고 정착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유리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도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하나님이 주신 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성을 쌓아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었겠죠.

 

결국 가인과 그 후대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죄악의 번영을 대표하는 집안이 되었습니다.

 

가인의 후예인 라멕이라는 사람은 사람을 죽여놓고도 그것을 자랑하듯 노래합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3:24)

 

하나님이 가인을 위해서 주신 표를 인용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자신의 조상 가인과 마찬가지로 나도 살인자며, 나를 헤치는 자를 위해서는 그 벌로서 77배로 복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가인의 후손들을 죄의 번영과 타락의 대표적인 가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시초에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던 가인이 가장 꼭대기에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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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리고 모든 죄의 삯은 사망이라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3, 6)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가인과 같은 죄인은 되지 맙시다.

 

왜 죄인으로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뿐인데, 그 결과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냐고 반문하지 맙시다.

 

그 처벌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묻지 맙시다.

 

그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 사람을 입고 영생을 누리면 그만입니다.

 

물론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지은 행위의 죄로 인해 교회로부터 권면이나 권징을 받을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도 아담처럼 그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거나, 혹은 가인처럼 그 권면과 권징이 너무 도가 지나친 것은 아니냐고 따져 반문하기보다는, 나를 되돌아보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 것을 다짐합시다.

 

나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아이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털어놓고 어머니로부터 용서를 구하는 것이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 아니라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를 회복하는 한 과정이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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