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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2] "그럴 수 밖에 없는" 신앙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 - 선악과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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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2] "그럴 수 밖에 없는" 신앙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 - 선악과 이야기

빚진자TV 2020. 8. 3. 22:00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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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며 교회를 출석하다보면 청소년 친구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들었나요?“

 

여기에 추가로 따라오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죠.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고 계셨나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알고 계셨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의도하신 건가요?”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고 계셨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 건가요?”

 

사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악과를 왜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에게 난제로 다가오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무신론자들은 이것을 무기로 삼아 기독교인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선악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서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은 정말 악하신 분이거나 아니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 걸까요?

 

사람들이 이것을 우리에게 물어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여러 이야기가 논의될 수 있는 주제이고 특히나 제가 다루는 이야기는 이 선악과 이야기의 지극히 일부만을 다루는 것임을 미리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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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이야기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잠시만 그 대강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죠.

 

그리고 그들을 에덴동산이라는 곳에 두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전부 아담과 하와가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금지하신 열매가 단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동산 가운데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동산의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는 동산의 중앙에 가게 될 때마다, 금지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와 생명 나무의 열매 중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생명 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에덴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

 

어느 날 뱀이 하와에게 나타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 유혹합니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에게 그 열매를 주고,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됩니다.

 

이로써,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추방되는 결말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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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아담과 하와에게 바라셨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이 부분은 제가 천지창조 이야기 1편에서 다뤘듯, 아마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부모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며 서로 사랑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뤄가기를 꿈꾸듯, 하나님도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을 관리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주신 동산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함께하며, 사랑하며, 교제하고, 즐거워하고, 창조된 모든 것을 누리는 것...

 

처음 에덴에 인간을 두시며, 그들에게 기대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바라셨던 것이죠.

 

이게 선악과에 관한 질문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실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잠시 다른 주제로 넘어가 계속 이야기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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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의 영화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어린 조카와 함께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마녀 고델은 어린 공주 라푼젤을 납치하여 탑에 가두어 양육하며 자신이 마치 진짜 엄마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탑에 갇혀서 평생을 지내온 라푼젤에게 고델이 언제나 하는 말이 있었죠.

 

엄마는 널 사랑해. 탑 밖으로는 절대 나가선 안돼. 거긴 너무 위험해.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엄마는 아주 잘 알고 있지.”

 

라푼젤은 고델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며 자라왔습니다. 마녀 고델을 진짜 엄마로 믿으며 자라왔죠. 고델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라푼젤 역시 사랑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이죠.

 

고델 이외에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그녀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오직 고델 뿐인 상황에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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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십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의지적 선택이 뒷받침되어야 성립합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에덴에서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는 관계를 원하셨지요.

 

그 사랑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사랑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상황에서, 그래야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 진정한 사랑과 교제는 바로 선악과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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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고델은 물론 라푼젤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라푼젤이 성 밖으로 결코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고델 자신만을 바라보며 성 안에서 고델을 위한 노래만을 부르도록 만들었죠. 고델이 라푼젤에게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닌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델은 라푼젤이 어머니를 위해 탑에 남아줄 것인지, 혹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 밖을 향해 탑 밖으로 나갈 것인지 선택하게 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고델이 라푼젤로부터 원했던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더라면, 이런 말을 듣고 싶었겠죠.

 

어머니, 전 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탑 밖에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있겠죠. 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탑 밖으로 나가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말씀대로 이곳에서 영원히 어머니를 위한 노래를 부르며 여기에 남아있을게요. 이건 나의 의무라기보다는 나의 선택이에요.”

 

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셨고, 인간과의 교제를 원하기보다는, 인간으로부터 오직 찬양과 높임만을 받기 원했더라면 선악과를 만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셨던 인간과의 교제는 바로 진실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교제였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해야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기 위해 설계된 존재입니다.”라는 고백보다는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보다는, 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해요. 그것은 나의 선택입니다.”의 고백이 더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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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것을 모르고 계셨을까요? 물론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죄악을 저지르는 순간, 하나님은 마음이 찢어질 듯 더 아프셨던 것이겠죠.

 

혹시 어떤 관계의 끝이 비참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결국에는 배신의 관계로 돌아서게 될 것을 알고서도, 상대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알고 있나요?

 

굳이 그것이 배신의 관계는 아니더라도, 결국 끝이 좋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해서 그 관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선악과를 결국에 먹게 될 아담과 하와를 보면서, 하나님은 바로 그런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인간은 보통 그런 관계를 갖는다면, 본인이 먼저 상처 입기 싫어 상대를 먼저 버리겠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이 인간들이 결국엔 나를 배신하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이 인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진정한 교제와 사랑을 나누기 원한다.

 

이 아픈 가슴을 어찌할 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서, 이들이 나를 배신해도 나는 나의 택한 백성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시며, 그 백성을 구원하고자 예정하시고 약속하시는 그 마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쫓아내시면서도, 반드시 잃어버린 나의 백성을 구원하리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승리하실 것을 뱀에게 주어지는 저주를 통해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그런데 그 마음을 모르는 인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알고도 선악과를 둔 것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조장한 것 아닙니까?”

 

본인이 죄를 짓게 만들어 놓고는 우리 더러 죄인이라니, 이건 우리를 가지고 노는 신의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이런 말에 하나님은 다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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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의 문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뿐입니다.

 

차원을 넘어서는 사고, 미래와 과거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 예정과 선택의 자유 등의 다양한 논쟁거리가 많은 주제이죠.

 

하지만 여기에서 저는, 적어도 이것 만큼은 꺼내어 우리에게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지만 내가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서, 혹은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아니면 내가 하나님 아니면 다른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더라도, 내 눈앞에 하나님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도록 강요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택하겠습니다.”

 

이것이 선악과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중 하나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신앙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에덴 중앙에 함께 두심으로써, 하나님이 아담에게 원하셨던 것이 그것이었다면,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