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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44] 칭의와 성화에 대하여 -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의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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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44] 칭의와 성화에 대하여 -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의 이야기

빚진자TV 2024. 1. 9. 19:44

https://youtu.be/F9CzDvN6tCY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나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은 야곱은 에서의 분노를 피해 고향을 떠나 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야곱은 20년의 긴 세월을 외삼촌 라반을 위하여 일하며, 아내와 자식을 얻고 자기 소유의 재산도 갖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라반과 헤어지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아직 형 에서를 만나기가 두렵습니다.

 

형의 분노가 여전하여 나를 죽이고자 할까 두려움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야곱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묵상하실 말씀은 창세기 3228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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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과 헤어진 야곱은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 있는 가나안 땅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길을 향하던 중,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그곳의 땅을 마하나임이라 이름 붙이죠.

 

마하나임에서 길을 떠나며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전, 미리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소식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야곱의 이 보낸 사람은 야곱보다 먼저 에서에게 가서 야곱의 소식을 전하며 에서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아무래도 야곱은 에서가 아직 자신에게 분노의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사람을 보내 에서의 마음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보낸 사람들은 돌아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형님이 사백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주인님을 만나러 오고 있습니다.”

 

야곱의 마음에는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혹 형이 자신을 죽이려 사람을 동원해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죠.

 

이에 야곱은 자신의 동행자들과 가축을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이는 혹 에서가 자신을 공격하면 절반의 재산과 사람들을 도망쳐 살게 하기 위함이었죠.

 

여전히 마음이 두려운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전에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저의 고향, 저의 족속으로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 하셨죠. 저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진실하심을 제가 어찌 다 감당하겠습니까? 저의 소유는 처음에는 지팡이뿐이었지만, 이제는 저의 소유가 두 떼나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에서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 간구합니다.

 

주님, 저를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주세요. 저는 에서가 저와 제 처자식을 공격할까 두렵습니다. 저에게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 저의 자손을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약속하셨으니 저를 도와주세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자신의 재물과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고는 간절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야곱은 정말로 에서가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야곱은 에서에게 바칠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행여나 에서가 자신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남아있더라도 먼저 선물과 예물을 보내면 그 감정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에서였죠.

 

야곱이 예물로 준비한 가축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만 해도 500여 마리가 넘습니다.

 

그것들을 종들에게 맡겨 앞서 보내고, 에서를 만난다면 이 모든 것들이 야곱이 에서에게 보낸 선물이라 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예물을 세 무리로 나누어 앞서 보낸 뒤, 야곱은 밤을 지내다 일어나 자신의 가족을 마지막으로 얍복강을 건너가게 했죠.

 

모두를 앞서 보낸 이곳에서 이제 야곱은 혼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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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복강에 홀로 남은 야곱에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32:30)

 

그리고 야곱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셨죠.

 

야곱이 마지막에 상대가 누구인지 이름을 알려달라 청하는 모습을 통해서 추측하건대, 야곱도 처음엔 그가 하나님이었는지는 몰랐던 모양입니다. (32:29)

 

물론 성경학자들 간에도 야곱과 씨름한 존재가 하나님인지, 하나님의 천사인지, 예수님인지, 심지어는 이것이 씨름이 아닌 기도가 아닌지 등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만, 저는 28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선은 정말로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고 생각하고 묵상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온 재산과 가족을 먼저 강을 건너보내고 혼자 남게 된 자신이 뜬금없이 누군가와 씨름을 하고 있다니, 야곱 본인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씨름은 날이 새도록 계속되었습니다.

 

종합격투기 선수들도 30분 정도의 시합을 온 힘을 다해 계속한다면 결국 지쳐 쓰러집니다.

 

그러니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지치고 힘든 일인지 아시는 분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야곱은 꽤 끈질기게 그 사람과의 씨름에 매달렸던 모양입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기지 못해 결국 야곱의 허벅지를 쳐서 관절이 어긋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으면 이로 인해 야곱이 다리를 절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2:31)

 

아침이 밝아오자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날이 밝아 오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아마 야곱은 밤새 그 사람과 씨름하며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축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지닌 인물이라 여겼던 모양이지요.

 

에서와의 만남이 두려웠던 야곱은 그의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그 밤이 지나도록 힘든 씨름을 계속 이어나갔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축복을 얻기 위한 씨름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만큼이나 두려웠던 것이었겠죠.

 

그 사람은 야곱에게 물었습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대답했습니다.

 

저는 야곱입니다.”

 

너의 이름은 이제 야곱이 아니다.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

 

그 사람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에게 청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하지만 그 사람은 야곱에게 어찌 자신의 이름을 묻느냐 말하며 그저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생명이 보전되었다 하여 그곳을 브니엘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야곱이 허벅지로 인해 다리를 절며 브니엘을 지날 때, 아침 해가 돋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본문 창세기 32장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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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씨름 이야기는 정말로 난해한 본문입니다.

 

야곱이 과연 누구와 씨름을 했는가에 대한 문제부터, 야곱이 정말로 씨름을 한 것인지, 혹은 열심히 기도한 것을 씨름이라 표현한 것뿐인지 등 다양한 논란이 있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야곱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바로 야곱이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야곱이 새롭게 받게 된 이름 이스라엘하나님을 이기다의 의미라 합니다.

 

게다가 이 이름은 훗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어느 국가의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름의 어원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야곱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이름을 받게 되는 사건이기에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순간으로 여겨지는 본문이지만, 그 난해함으로 인해서 성경을 읽는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어떤 성경적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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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의 본문을 묵상하며 야곱이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되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하여 본문을 곱씹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라니, 참으로 놀라운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올라옵니다.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것이 분명한가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고 보기에는 너무 그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습니다.

 

허벅지를 맞아 관절이 어긋나 씨름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리를 저는 모습.

 

떠나려는 이를 붙잡으며 자신을 축복해달라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모습,

 

이게 정말 하나님을 이긴 사람으로 승자의 모습이 맞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가진 뜻에 합당한 모습일까요?

 

물론 야곱은 처음에는 분명 하나님을 이기려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를 치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야곱이 허벅지를 공격당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제야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이기려 할 때는 허벅지를 공격당하며 이기지 못하더니, 오히려 그 뒤 야곱이 아무것도 할 수 없자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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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의 인생이 오늘의 본문 야곱의 이야기와 평행선을 이룬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으로 의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된 우리의 인생과 말이죠.

 

칭의(稱義)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죄를 용서받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포함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모두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5:9)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올라옵니다.

 

우리는 정말로 의로운 자들이 분명한가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은 자들이라 하기에는 너무 삶의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죄를 이기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지만 끝내 또다시 패배하는 모습.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비겁한 모습

 

이게 정말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은 모습이 맞습니까?

 

의인이라는 자에게 합당한 삶의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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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하나님을 이긴 자라는 칭함을 얻은 것은

 

야곱이 정말로 하나님을 씨름으로 이겨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은 정말로 우리가 인생을 의인처럼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이기기 위해 씨름하던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선행과 봉사, 노력, 수련, 행위로 의인이 되고자 했던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야곱의 허벅다리 관절이 어긋나고, 그렇게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그에게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구원의 문제에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올바른 구원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입니다.

 

하나님을 이긴 자로 야곱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이기고자 하는 야곱의 씨름이 아닌,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신 하나님의 일방적 칭함과 명명(命名)이며,

 

우리가 예수를 믿어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아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의로움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봉사, 의로운 자가 되고자 하는 노력이나 열심히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저에게 주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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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새 이름을 얻은 야곱은 새 이름에 맞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모든 열방을 돌아오게 할 제사장 나라의 대표가 된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의 인생을 통해 열방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에게 의인이라 칭함을 주신 것은 우리가 정말로 의로운 자들이었기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그 이름에 어울리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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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리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야곱의 인생도 이름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다 하여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자들이 걸어야 할 다음 발걸음은 성화, 즉 날마다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삶의 과정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드린다면, 그가 우리 삶을 통해 많은 열매를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기고자 씨름하지 마세요.

 

내가 의인의 삶을 살아내고자 분투할 필요 없습니다.

 

허벅지의 관절이 어긋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이 나의 삶을 통해 그분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린다면,

 

우리는 당연하듯 성령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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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으로 소망 없는 나의 인생에, 하나님은 나에게 의로운 자라 칭함을 주시고

 

나의 삶을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가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오니

 

정작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구원받은 것에 대해 나의 공로는 자랑할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2:8-9)

 

그러니 의인이라 칭함을 받던 과정이 그랬듯, 앞으로 성화의 인생도 내가 무언가를 이뤄내고자 고집부리는 삶이 아닌, 성령 하나님께서 계속 이끌어가시도록 우리의 삶의 주인 자리를 그분께 기꺼이 내어드리는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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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여 내 영혼을 충만케 하소서

내 속에 강물이 넘쳐나게

오 성령 하나님 날 다시 새롭게 하소서

채우소서

내 영혼이 세상 유혹 다 이기고

다시 주를 닮아가도록

채우소서

내 영혼이 세상 유혹 다 이기고

오직 주만 나타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