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자TV 말씀묵상나눔
[성경묵상나눔 018] 술취한 노아와 세 자녀의 이야기 본문
창 9:18-29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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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타인에게 떳떳하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것이 큰 잘못인 것은 아닌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령 어떤 목사님이 담배를 피우지만, 성도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혼자 자신만의 장소에서만 담배를 피웁니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 배운 담배인지라, 끊기도 힘들고 금연을 시도할 때마다 매번 실패하기 일쑤입니다만, 적어도 목사라는 신분이 있기에 남들 앞에선 들키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이런 일은 떳떳하게 남들 앞에서 솔직히 밝히기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목사님이 매우 큰 잘못을 했다고 대놓고 나무랄 수도 없는 문제이지요.
또 다른 이야기로는 어떤 장로님과 권사님 부부가 있습니다.
둘은 매일 집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잔을 기울이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가끔은 함께 거리의 술집으로 가서 잔을 기울이곤 하죠.
하지만 이런 일 역시 교회에서 모두에게 “우리 부부는 매일 술을 마십니다.”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하기엔 애매하죠. 그렇다고 이것이 매우 큰 죄를 지었다 나무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큰 잘못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 밝히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가 존재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주변 사람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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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본격적으로 본문의 이야기를 들어가기 전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떠올려봤으면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의 벌거벗음을 알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껴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리게 되었죠.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그들의 수치심, 부끄러움, 벌거벗음을 가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나아와 함께 교제할 수 있도록 말이죠.
선악과를 먹고 나서 알게 된 벌거벗음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다 이겨내고 담대히 나아오라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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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인 우리 역시도 하나님께 함부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완전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 된 우리가 어떻게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모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다 이겨내고 담대히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가죽 옷으로 그 부끄러움을 가려주셨듯,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을 얻었습니다.(히 10:19)
죄를 짓고도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며 감사한 마음이 전혀 없는 철면피의 모습이 아닌,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도록 길을 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다시는 죄의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다짐하는 모습으로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렇게 대하시는 분입니다.
가려주시고, 감싸주시고, 다시 나와 에덴에서의 예전처럼,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즐겁게 교제하고 사랑하자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통해 그 길을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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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세상을 심판했던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노아가 홍수심판 이후, 방주에서 나와 한창 포도 농사를 짓던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노아는 포도주에 잔뜩 취했습니다.
그리고는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체,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었죠.
술에 잔뜩 취해 자신의 공간에서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모습이죠.
특히나 노아가 습관적으로 그렇게 술에 취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혹은 홀로 술에 잔뜩 취해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숙취로 인해 머리가 아프고, 속도 좋지 못한 본인의 상태를 돌아보며, 다시는 이렇게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게 습관인 분들은 매번 그런 경험의 반복이었을 겁니다.
이건 특히나 교회의 사람들이나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밝히기 힘든 부끄러운 이야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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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아가 매우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그저 술을 마시고, 그것이 많이 과했고, 장막 안으로 가서 벌거벗고 있었던 것뿐이죠.
이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매우 큰 잘못을 한 건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술주정을 하며 돌아다닌 것도 아니죠.
아니면 술을 먹고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큰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죠.
처음 예시로 들었던 목사님이나 장로님 부부의 이야기처럼, 큰 잘못이라고 정죄하기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잘한 일이라 칭찬할 만한 일도 아닌 애매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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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셈과 함과 야벳이었죠.
그렇게 노아가 술에 취해 장막에서 벌거벗은 채로 있었을 때, 함이 장막으로 와서는 노아가 벗은 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뭐... 그럴 수 있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밝혀지지 않았던 부끄러운 타인의 모습을 자의든, 타의든 보게 되는 경우가요.
담배를 피우셨던 그 목사님이 어디에선가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길거리를 지나가던 중 어느 술집의 유리창 너머로 장로님과 권사님이 보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흔한 일이 함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장막에서 벌거벗은 채로 있는 장면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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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함은 의외의 반응을 보입니다.
장막 밖으로 나가더니 셈과 야벳에게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 알립니다.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먹고 상황이 위험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런 차원의 알림이 아닙니다.
마치 어린 초등학생이 같은 반 친구가 화장실에서 큰 용변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반 친구들에게 소문내는 차원의 알림이었겠죠. (이른바 ‘얼레리 꼴레리’의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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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함의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함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셈과 야벳은 의도적으로 뒷걸음질을 하며 장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는 얼굴을 돌린 체,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옷으로 감춰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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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셈과 야벳의 이런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던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을 피해서 숨었을 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시며 그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가려주신 것처럼,
셈과 야벳도 노아의 부끄러운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고, 은밀히 가려주었습니다.
어쩌면 셈과 야벳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행동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공동체 구성원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의 목사님이 홀로 끊지 못하는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여러분이 평소 존경하시던 장로님이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노아의 부끄러운 모습을 떠벌리던 함의 모습처럼 교회의 구성원에게 모두 알리고 다니겠습니까?
아니면 애써 그것을 보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며 노아의 치부를 가려준 셈과 야벳처럼, 못 본 척 조용히 덮어주겠습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지금 공동체가 죄를 지을 때, 그것을 두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죄를 행하는 것과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죄에 관하여는 교회의 권징에 관한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에 대해서는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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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함의 후손은 저주를 받고, 셈과 야벳의 후손은 축복을 받습니다.
이후 각각의 후손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다시 인류를 번창시켜갔습니다.
노아의 예언에 따른 그 후대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의 수치를 형제들에게 떠벌렸던 함의 가정에서 과연 자녀에게 올바른 인성교육과 훈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노아의 예언과, 큰 축복을 받은 셈의 후손에서 바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뤄갈 이스라엘 민족이 나오게 됩니다만, 그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을 가진 사람의 가정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자녀의 훈육이 이루어질까요?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와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나요? 때로 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볼 때, 어떤 반응을 해주고 있나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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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본 묵상문은 여러 목회자의 검수를 거친 문서입니다.
그 중, 다른 의견을 보이셨던 목회자분도 계시기에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함이 장막으로 노아의 하체를 본 사건에 대해, 성적인 타락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타인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교훈을 주는 본문의 결론이 결국 타인의 실수로 인한 가문의 저주로 이어지는 역설적인 결말에 대해서,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죠.
물론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모든 해석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저와 같은 전문성은 없는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가장 문제가 되지 않는 안전한 성경해석의 방식이라 여겨집니다.
만일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 중,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과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더 깊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교회에서 평신도에게 추가적으로 알려줘야 하는 내용이겠지요.
저의 묵상 적용 방식이 너무 표면적이고 문자적인 성경해석만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평신도의 입장에서는 성경의 자의적인 해석의 위험성에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되었든, 노아의 술취함, 발가벗음의 사건과 함의 행동에 관한 오늘 본문의 내용이 단순히 타인의 실수나 허물을 덮어 주는 교훈의 관점을 넘어서서, 더 깊은 무언가가 있다는 해석을 제시한 다른 목회자분도 계셨다는 점을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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