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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7] 옛날 이야기? 우리의 미래의 이야기! - 노아의 방주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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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나눔 017] 옛날 이야기? 우리의 미래의 이야기! - 노아의 방주이야기

빚진자TV 2020. 12. 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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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야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우리가 지난 창세기를 묵상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오늘은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로 노아의 홍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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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난 뒤, 아담과 하와는 아들을 하나 더 낳아 셋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후 가인의 후예들과 셋의 후예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낳은 그 많은 자손들은 이 세상에 번성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지면서, 처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기대하셨던 인간의 모습은 이 땅에서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 땅을 홍수로 심판하시기를 다짐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온 땅이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고 표현하는데요,

 

사전적 의미로는 완전히 부서지고 망가지고 무너졌고, 사나움이 땅에 가득하다는 뜻입니다만,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타락과 죄악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노아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호흡이 있는 육체를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울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이윽고 비가 40일 낮과 밤으로 내려 온 세상에 물이 가득 차서 모두가 다 죽었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살아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세상에는 땅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두셨습니다. 우리는 이 언약을 무지개언약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전 지구적 규모의 홍수심판은 인류에게 더 이상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9:13)

 

이것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대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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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 깊숙이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 정말 많은 신학적 논쟁의 주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른 종교 신화에 등장하는 동일한 서사구조, 혹은 네피림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창조과학자들이 말하는 물층의 실재성, 무지개 언약에 대한 내용과 육식의 시작 등 다양한 논쟁거리가 많은 내용입니다.

 

아마 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만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 수많은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 정확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안전한 신앙관을 갖는 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묵상 주제를 끌어낼 수 있을까요?

 

만일 그저 옛날 성경에 등장하는 오래된 이야기에서 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주제로 남아버릴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소개하는 것에서 오늘의 묵상을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단순히 그저, 옛날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수준의 이야기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내용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의 이야기, 세상의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의 말씀으로 묵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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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재림하실 때에 어떤 모습일지를 보여주는 예표가 되는 사건입니다.

 

얼마 전, 달란트 비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태복음 24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던 적이 있었죠?

 

바로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종말론적 세계관을 소개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 예수님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직접 언급하며 말세에 어떤 모습일지를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세상의 끝 날의 모습과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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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때 방주에 올라탄 사람과 말세 때 구원받는 자

 

방주에 올라탄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에, 우리는 말세에 구원받는 자들에 속해야 합니다.

 

홍수시대, 어떻게 노아는 방주에 올라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하나는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6:8)는 점과 나머지 하나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당대의 의인이며 완전한 자(6:9)였다는 점입니다.

 

구원은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누가 구원받을 것인가, 누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럼 누가 구원받을 것인가는 이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구원의 문제에 관한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다 하더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하며, 하나님의 관점에서 의로운 자라는 평가를 받도록 세상에서 살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임과 동시에 그 삶이 경건했던 것처럼 말이죠.

 

노아를 소개하는 완전한 자라는 말은 이쉬 타밈(אִישׁ תָּמִים)’, 즉 히브리어 사전에서는 행동이 바른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구원의 관점에서 그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경건한 삶을 살아갑시다. 노아가 죄악이 만연하던 그 시절, 완전한 자였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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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원하는 설계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설계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노아가 방주를 짓는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말세에 재림의 날, 구원에 관한 힌트를 또 얻을 수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방주에 타기 위해, 노아는 자신의 방식대로 그 방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주 설계도는 상당히 치밀하고 섬세했습니다.

방주의 재료, , 길이, 높이, 창문의 위치와 간격, 문의 위치 등의 세부적인 사안까지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6:22)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구원의 문제를 우리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세상의 끝이 올 것인지,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해 고통 받았던 시절을 꼽으라면 사사시대를 언급할 수 있겠습니다만, 거기에 나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우리는 구원에 관한 이 문제를 우리의 소견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며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구원의 방주를 지었듯,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성경대로 우리 구원에 관한 문제를 풀어내야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세의 심판과 구원의 문제에 대해 적혀있는 대로, 우리는 그대로 믿어야지, 다른 해석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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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수가 올 것을 알았던 사람과 세상의 끝 날이 올 것을 아는 사람.

 

예수님은 재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는 홍수가 있을 것을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것을 알고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를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그들이 다 멸망하기까지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 뒤, 그들이 다 심판받기 까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쪽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서 말세에 일어날 기록된 예언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세상의 끝 날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의 예언된 징조와 현대사회의 역사의 흐름 속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비교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평신도에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지금 당장이라도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나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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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방주에 들어간 자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자가 있었듯, 언젠가 구원받을 자들과 그렇지 않을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설계대로 방주를 지었던 자가 있듯, 언젠가 성경대로 구원의 삶을 살아갈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물로써 심판이 있었듯, 언젠가 불로써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벧후 3:6-7)

 

그 때에 방주 짓던 자들을 조롱한 사람이 있듯, 언젠가 예수 믿는 자들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의 노아의 삶의 흔적은, 언젠가 우리의 삶의 흔적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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