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 교회의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공유한 글...
00. 갑자기 키보드에 손을 올린 이유
00교회 중고등부 친구들 모두 안녕하세요. 중고등부 담당 김범수전도사입니다. 갑작스럽게 장문의 글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갑자기 장문의 글을 준비했냐구요? 다름 아니라 우리 00교회의 중고등부 출신이며, 현재는 머나먼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000 형제와의 카톡질 중에, 여러분과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가 나와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씁니다.
“쌤! 혹시 예수와 다윈의 동행이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갑작스럽게 연락이 오게 된 준상이의 카톡이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죠.
“뭐냐 그 제목부터 개똥철학 냄새가 풀풀 나는 책은?”
혹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이야기를 나누자면, 다윈이라는 사람은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함께한다는 제목이죠. 마치 김치와 초콜렛의 조합이랄까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과학의 영역을 전공으로 공부하며(이 친구는 전공이 곤충생명학) 아무래도 기독교의 가르침과 공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수업으로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지어 생각하려 했으나, 신앙과 과학의 양립 문제가 마음 속의 고민으로 남아버린 것이었죠.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의 조언을 구해보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고 추천받게 된 책이 바로 ‘예수와 다윈의 동행’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목으로부터 어떤 내용일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기타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책의 주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먼저 저의 글을 읽고 나서 그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해주었죠.
왜냐하면 어린 나이의 미성숙한 지성은 아직 자신만의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마치 물에 젖지 않은 스펀지처럼, 어떤 사상이나 철학, 세계관을 필터 없이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다른 그 어떤 사상을 접하기 전부터 먼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는 것이 첫 번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00교회의 중고등부에게 공유해도 되겠냐는 동의를 구하고 이렇게 글을 써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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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교와 관련된 책을 읽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요? 어떤 신학교는 교회에서 사역하며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할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신학교가 있고, 어떤 학교의 신학 전공자는 그저 하나의 학문으로서, 인문학의 일환으로서 신학을 다루는 곳도 있습니다. 조금 충격적이죠?
우리는 흔히 신학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다 믿는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며, 그 성경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사건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과, 성경의 이야기에 한 번 더 어떤 해석을 한 번 더 가미해서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조금 구분하기 위해, 성경을 기록된 사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보수파, 기록된 성경에 한번 더 해석을 가미해서 믿는 사람들을 진보파라고 표현할게요.
예를 들어서 대표적으로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기록에 대해서, 하나님이 실제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이스라엘을 지키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고(보수파), 어떤 사람들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지키시고자 했는가를 표현하는 일종의 문학적 장치였다고 설명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진보파).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죠.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사건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믿습니다(보수파).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을 일으키신 사건이 아니라,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기쁨을 표현한 하나의 상징으로서 해석하는 것이죠.(진보파)
이처럼 성경 하나만 가지고도 그것을 얼마나 믿느냐의 이야기로 해석이 갈라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진보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도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와 관련된 책을 읽는다면, 반드시 그 책을 쓴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성경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며, 그 책에는 그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담겨 있을지를 잘 살펴보고 읽어야 합니다. 만일 책의 저자가 나의 신앙관과 다르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신앙관이 나에게 스며들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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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보수파와 진보파요? 뭐가 나아요?
저도 신학을 전공하며 대학원에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입니다. 제가 다니는 총신대학원은 장로교 교회의 합동 교단의 교회에서 필요한 일꾼을 길러내기 위한 기관입니다. 이곳에서 고백하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쓰인 책입니다. 그러니 성경에 쓰여진 모든 기록은 하나님이 저자이신 것이죠.
그럼 성경에 쓰여진 기적은요? 네!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기적을 실제 일어난 사건으로 믿습니다. 즉 보수파에 가까운 것이죠. 그리고 뭐가 나은 것 같냐구요? 네 저는 강력하게 성경의 기적은 기왕이면 쓰인 그대로 믿는 것이 더 낫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주세요.
물론 진보파의 방식으로 성경의 기적을 이해하는 것도 좋은 점은 있어요. 먼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안되는 것 같은 것도 쉽게 이해가 가고 납득이 되는 방향으로 설명하니까요.
하지만 진보파 해석 방식에는 크나큰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의 기적이 우리가 이해하기 쉽고 납득이 가능한 방향으로 해석해서, 성경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없게 해준다는 장점은 있을 수 있어도 말이죠. 그건 바로, “성경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많은 사건들이 이성과 상식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는 이야기입니다. 이거 가능합니까?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기적의 사건이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기독교라는 종교 그 자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우리가 이해 가능한 수준의 상식선의 이야기로 치부하며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수준을 하나의 비유나 상징, 문학적 기법이라는 수준으로 격하시켜버린다면, 이 또한 우리 기독교라는 종교 그 자체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는 위험한 사상이 되어버립니다.
첫 사람 아담의 경우 어떻습니까? 아담이 만일 진화의 산물이고, 아담보다도 더 위의 어떤 조상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요? 그럼 인류의 원죄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아담 이외에도 다른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인데, 그럼 원죄는 어떻게 되는거죠? 이 또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사상이 되어버립니다.
즉,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성경에 기록된 기적의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면, 진보파의 방식은 정말정말정말로 위험한 접근입니다. 차라리 기록된 그대로, 실제 사건으로 믿는 보수파의 믿음이 더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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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그럼 과학적 사실과 충돌되는 기적의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요?
03-1. 과학은 무엇입니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우리의 상식이나 과학적 사실들과 충돌되는 성경의 기적의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학문을 배우면서 많은 부분이 성경의 가르침과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으셨다고 말하지만, 과학은 우연한 사건의 결과로 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직접 창조하셨다고 말하지만, 과학은 진화의 결과로 봅니다. 이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우리의 마음에 어려움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생각들은 한 가지 전제를 가정합니다. 바로 ‘과학은 완벽하다.’, ‘과학은 객관적이다.’ 라는 사실이죠.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사람들이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과학철학의 사조는 과학적 사실이 정말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토마스 쿤’이라는 철학자의 ‘과학혁명 구조’라는 책을 통해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는 과학이 절대-객관적이고, 절대-합리적이며, 절대-이성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과학은 반드시 진실된 것을 추구하며, 진리에 다가서는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믿어왔어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으며, 과학이 반드시 절대-이성적이고 절대-합리적인 어떤 것은 아니며, 그 발전 방향 역시도 반드시 진리를 향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죠. 토마스 쿤의 이러한 사상은 ‘과학의 겸손’을 요구하는 외침이었어요.
과학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어요. 우리가 정말 사실로 믿어왔던 공룡의 모습은 지금 어떻게 변해버렸나요? 지금 티라노사우르스의 삽화에는 깃털이 달려 있어요. 언젠가는 공룡이 파충류이다는 말도 바뀔 수 있어요. 그 분야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공룡도 그저 조류의 한 종류였을 것이라 말합니다. 충격적이죠? 과학은 이렇게 계속 변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과학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꼭 ‘그것은 반드시 옳다’라는 주장은 아니예요.
만일 성경과 과학이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다면, 성경은 과학을 통해 증명되어야 하거나, 과학이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다시 검토되어야 하는 등,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성경은 우리에게 증명을 요구하지 않아요.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지만, 과학은 변합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03-2. 오히려 성경의 기적이야말로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이 더 많아요.
이건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홀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니, 조금 집중해서 한 번 들어보세요.
여러분 종이 위에 작은 점 하나를 찍어봅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 점은 물리적으로 0차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점을 확대하고 확대하고 더 확대해서 현미경으로 쳐다본다면,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원이 됩니다. 네, 갑자기 0차원처럼 보이던 물리적 세계가 2차원으로 보이는 물리적 세계의 공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확대하고 확대해서 관찰하면, 그보다 더 상위 차원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공간의 세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물리 법칙들이 통하고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등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현미경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갑자기 3차원의 세상에서 적용되던 물리 법칙들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펼쳐집니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미시물리학, 양자역학이라고 합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기적으로 여기는 사건들이 일어나요.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두 가지의 모습이 하나의 물질 안에 공존하고, 어떤 것을 관찰하는 순간 위치가 변해버리고, 하나가 움직이면 그것에 얽혀서 연관된 또 다른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 반응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현상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이 성경의 기적을 이해하는 힌트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하며, 양자중첩현상은 타락 이전의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전지하심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을 이해하는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광자가 파동과 입자의 이중적 특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는 개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비슷해보이기도 해요. 이 이상 다루는 것은 어려운 내용이기에 기회가 되면 다음에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물리 과학자들이 말하는 11차원 그 이상의 존재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장 우리의 차원에서 미시적 세계를 관측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도 이해할 수 없는데, 어찌 성경에 나온 모든 기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미시물리학의 발전은 오히려 우리가 성경의 기적들 또한 더 상위 차원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주제 03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성경의 기적 또한 우리가 그저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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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제 유신 진화론의 관점을 가진 듯한 책을 읽고자 하는 그대에게...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직접 추천해 준 책인 만큼,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면 난처한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서 어땠냐는 질문을 받게 될지도 모르죠.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읽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 제목에서부터 나의 믿음과 신앙을 흔들리게 할 것 같은 책이라면 읽지 않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러나 반드시 읽어야겠다면, 앞서 제가 이야기한 내용을 반드시 기억하고, 책을 읽으며 나의 지성에 들어오는 사상으로부터 나의 신앙을 지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먼저 저자는 어떤 관점으로 성경을 믿는 사람일까? 보수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믿는 사람일까? 아니면 진보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믿는 사람일까? 만일 그 관점이 나와 같다면 어느 정도는 내가 인정할 말을 하겠구나. 만일 그 관점이 나와 다르다면 조금은 내가 방어적인 태도로 책을 읽어야겠구나.
이 사람이 말하는 진화론은 무엇일까? 과학적 지식은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는데, 이 사람은 과학적인 지식에 대해서 절대적 맹신을 하는 오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겸손이 없는 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과학이라는 토대에 성경을 얹어놓으려 하는 시도를 하는 걸까? 아니면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진화론을 접목시키려는 것일까? 만일 이 사람이 성경을 불완전한 토대인 과학 위에 두려는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조금은 방어적인 태도로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더 나아가 성경의 기적에 대해서는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상위 차원의 물리적 현상마저도 지배하시는 하나님은 차원을 초월하시고 차원 자체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겸손히 피조물의 한계를 인정하며,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나의 부족한 지성을 겸손히 엎드리는 것이 옳은 길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지성인의 겸손한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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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글이 길다..... 이제 진짜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