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 10월 27일 연합예배에 대하여
마케팅에서 일관성의 법칙이라는 전략을 설명하며 주로 소개되는 우화가 있습니다.
낙타와 주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던 한 사람이 밤이 되어 천막을 치고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천막 밖에서는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밖에서 잠을 자던 낙타는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밖에서 모래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제 코와 입만 천막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요?”
주인은 허락했습니다.
낙타가 코와 입을 천막 안으로 들인다 해도, 주인이 잠을 청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낙타는 계속 이어서 말했습니다.
“주인님, 제 머리만 넣으면 안 될까요?”
주인은 거절하기가 애매했습니다. 이미 코와 입을 허락한 상황이기에 머리를 거절하기에는 조금 미안했죠.
하지만 낙타의 요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목까지, 다음은 앞다리, 다음은 뒷다리에 이어 다음은 꼬리...
그 거대한 낙타는 천막 안을 다 차지해버리고 주인은 좁은 천막 안에서 잠을 잘 수 없어 모래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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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코로나로 인해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마스크의 종류 중에서도 특히나 방역에 큰 역할을 한다는 KF 계열의 마스크가 큰 인기를 끌었죠.
자신의 신체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질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겠다는 국민의 선택은 칭찬받고 박수받을만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가 마스크의 착용에 관하여 개인의 선택에 맡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공공장소 등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도록 해서 국민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은 국가의 방향성에 대해서 찬성하며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대의명분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는 약간의 불편함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고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코와 입을 천막 안으로 넣어도 되겠냐는 낙타의 요청을 주인이 기꺼이 승낙했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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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침범은 마스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백신 패스라는 정책을 통해 백신을 맞지 않으면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정책이 시행됩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백신을 맞았다는 인증을 거쳐 식당 등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직장에서는 백신을 맞지 않은 미접종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국민의 여론은 팽팽하게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불이익을 줘서라도 백신을 접종하도록 강요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과, 자기 신체에 대해서 내리는 결정은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서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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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국가는 사적인 모임을 제재하고 특정 인원 이상의 인원이 모이면 과태료를 내도록 하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립니다.
헌법으로 보장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집회의 자유도 제한하기 시작하며, 많은 교회들은 침체를 겪게 됩니다.
자영업자들은 특정 인원 이상의 손님을 받을 수 없었고,
특정 시간이 되면 문을 닫아야 했으며
자신의 사업조차 자기 뜻대로 운영할 수 없었죠.
수많은 커플이 집합금지 제한으로 인해 결혼식을 계속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고, 미루지 못한 커플의 경우 하객들도 가려서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인해 결혼식장과 커플 사이에 많은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명절에는 가족들도 얼굴을 못 보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사적인 모든 모임은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시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낙타는 앞다리까지 천막 안으로 들어와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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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정부가 개인에게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리는 초반 상황에 미리 그 정책에 반대하며 SNS와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적었던 사람입니다. (비록 지금은 삭제한 글들이 많긴 하지만요.)
“마스크를 쓰냐 마냐는 개인의 선택이고, 자영업자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손님을 가려 받는 것 역시 그 사장님의 자유다.”
“국가는 개인이 마스크 착용을 강제할 권리가 없으며, 질병 상황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닌, 빠르게 백신을 들여오고 외부국가로부터 들어오는 입국을 차단하고, 국가를 봉쇄하며, 확진자 치료를 위한 병상을 확보하는 등의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의 마스크 제한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며, 결국은 우리의 삶을 전체주의적으로 통제하는 정책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저는 수많은 모욕적인 비난을 듣고 국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인터넷 댓글 등에서 토론하다 듣는 비난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내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비난을 직접 듣게 되었을 땐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나의 자유뿐 아니라 그들의 자유를 지키려 목소리를 낸 것이었을 뿐인데 말이죠.
국가는 이후 개인이 운동할 때에 설정해야 하는 러닝머신의 속도와 에어로빅의 음악 속도까지도 규제하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은 어이없어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꺼이 나의 자유를 집단을 위해 내어줄 수 있는 정말 간단한 행동에 관한 규제인 ‘마스크 의무화’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아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이야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방향이 전환되고 감기와 비슷한 정도로 코로나가 취급되기 시작하며 일상을 되찾게 되었기에, 그저 한 때의 에피소드로 남은 경험입니다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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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에 관하여 이야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법안에 그렇게 목숨 걸고 반대하냐?”
물론 우리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차별은 나쁩니다. 누군가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을 차별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악법은 언제나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아주 작은 영역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낙타가 처음에는 그저 코와 입만 천막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 부탁하듯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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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의 경우 누군가가 러닝머신의 속도와 에어로빅 음악의 속도를 규제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미리 이야기했더라면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 것입니까?
그 말을 믿기나 했었을까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낙타가 천막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 있는 경우를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10월 27일의 연합예배 참여를 독려합니다.
낙타가 코와 입만을 천막에 넣게 해달라는 부탁을 할 때, 우리는 낙타가 완전히 천막 안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는 상상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차별금지법에 통과된 다른 나라의 상황을 인용해가며 그 미래를 상상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낙타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있는 사례를 수없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죠.
교회에서 흔히 언급되는 동성애 비판 설교를 하다 체포된 목사님의 이야기나 자식의 성전환 수술을 반대한 아버지가 처벌당하는 사례 등의 이야기는 결코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야기이거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시작은 모두 천막 안으로 코와 입을 넣게 해달라는 낙타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에서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줬다는 소식이 우리 기독교계에서는 정말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미 낙타는 코와 입을 천막 안으로 들어온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허울 좋은 이러한 말들과 함께요.
“서로 사랑한다는데, 그 정도도 인정 못 해주나?”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냐?”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사랑이 없고 차별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야.”
서양 격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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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합예배를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선한 일을 위해서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 중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악을 대항하여 싸울 때에, 우리 안의 악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던 허울 좋은 말들은 결코 우리 사이에서 다시금 반복되며 오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일은 한다는데, 그 정도도 함께 못 해주나?”
“서울 가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냐?”
“이걸 함께하지 않는다는 건, 신앙심이 없고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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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합시다.
함께하든 함께하지 않든,
이 사안에 대해서 찬성하든 찬성하지 않든,
이 나라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나라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대한민국이
계속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그 기도 제목이라면 현 사안에 찬성하시든 반대하시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기도 제목일 것입니다.
그리고 연합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교회 신앙공동체의 오가는 차편과
당일 예배상황의 안전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연합예배 당일, 그것이 이벤트성 한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홀로 영광 받으시고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올라오도록 만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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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백성이 Heal Our Land – 제이어스
https://www.youtube.com/watch?v=e-jpdObqJz8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면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무릎꿇고 다 겸비하여 주께 기도하니
주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니
주님의 자비로 죄를 사하며
주님의 자비로 임하소서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이 땅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