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묵상나눔 009] 우리가 진리를 외치지 않을 때, 돌들이 외치게 될 안타까운 미래 -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돌들이 소리치리라)
(눅 19: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 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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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바둑의 역사에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국내 바둑계에서 최고라 손꼽히던 이세돌 프로기사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을 치루게 된 것이죠.
당시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바둑 인공지능의 수준이 바둑 프로기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세돌선수 역시도 대국 전의 인터뷰에서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감을 보여줬죠.
하지만 인공지능의 실력 앞에 이세돌선수는 쓰디쓴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총 다섯 번의 대국이 예정되어 있었고 세 번째 대국까지 알파고는 승승장구를 하게 됩니다.
제 4국에서 이세돌선수는 신의 한수라 불리는 78수를 통해 승리를 거머쥐지만, 최종적으로는 4대 1이라는 결과로 인간의 바둑은 인공지능의 바둑에 패배하게 되죠.
이후 바둑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는 상당수의 바둑종합기전이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인간의 실력을 초월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인간이 바둑의 실력을 갈고닦고 서로의 기량을 겨루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겠지요.
또한 인공지능의 실력은 더욱더 늘어만 갔습니다. 이세돌 프로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알파고는 세계 각국의 프로기사를 상대로 하나씩 무너뜨려갔습니다.
중국의 커제 9단,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도 알파고에게 패배하고 말았죠.
알파고는 68승 1패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 이후 수많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개발되었고 2019년에 들어서는 실력있는 프로기사가 석 점을 내어주고도 패배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인공지능의 실력이 월등해지겠지요.
바둑을 배우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인공지능 바둑이 개발되기 전, 사람들은 바둑을 배우기 위해서 바둑학원과 같은 곳에 가서 자신의 실력에 맞는 사람을 만나 대국을 하며 기량을 키워가고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보며 공부하고 그들의 조언을 듣는 것으로 실력을 키워갔었죠.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 대국을 하는 것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나의 기량에 맞게 대국을 하고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프로기사의 역할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바둑계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미 수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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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미래 산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육, 경제, 노동, 복지, 의료 등의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과 기계화는 미래 산업을 이끌어가는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되었죠.
이에 따라 사람들은 미래를 대비하여 많은 역량을 갖추고자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종교의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인가?
사실 이것은 멀고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지금 시작된 변화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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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베이징에는 용천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이한 스님이 있죠. 바로 법명 ‘센얼’스님입니다.
이 스님이 특이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이 스님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 스님이기 때문이죠.
아기자기한 귀여운 외향을 가지고 있으며 절에 찾아오는 신도들이 이 스님에게 가르침을 구합니다.
여러 불교의 교리에 대해서 신도들에게 쉽게 설명해주고 가르침을 전하고 경전도 외웁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도 이미 로봇 스님이 등장했습니다. 일본 교토의 400년이 된 사찰에서는 ‘마인다’라는 법명을 가진 안드로이드 스님이 등장했습니다.
센얼 스님과 마찬가지로 마인다 스님도 절을 찾는 신도들을 위해 예불을 드리며, 가르침을 드리고 반야심경을 일본어로 설법하며 외국인을 위해서는 외국어로도 번역을 해서 가르침을 전하기도 합니다.
이 사찰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지스님 고토텐쇼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원히 그 지식을 함양하고 최신 버전으로 스스로 업데이트 한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상황은 어떨까요?
종교개혁의 고장인 독일에서는 이미 로봇 목사님이 개발 중에 있습니다. 독일 비텐베르크의 ‘블레스유투’입니다.
헤세-나사우교회 스테판 크렙스 목사가 개발한 이 로봇은 실제로 로봇 목사를 상용화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기계와 인공지능이 종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논의하기를 원하는 마음에 이 로봇을 출시했다고 말합니다.
비록 기독교에서는 실제적으로 목사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는 로봇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미 많은 종교에서 로봇이 상용화되고 인공지능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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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이야기를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에 이야기입니다.
유월절, 유대인의 최대 명절에 예루살렘 성에는 많은 인파들로 북적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에게 말씀하셔서 구해온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 사명을 실천하시려는 때가 된 것이죠.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죽으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실현하시는 바로 그 때입니다.
감람산 내리막길의 가까이에 예수님이 다다르실 때에 많은 백성들은 예수님을 맞이해서 자신의 옷을 길 위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쳤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19:38)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
왕의 입성을 찬양하는 소리입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한 왕의 모습은 예수님의 사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죠. 그들의 메시아를 찬양하는 소리는 곧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말로 뒤바뀌어버리겠죠.
비록 그들의 마음은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예수님의 사역과는 동떨어져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원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구원사역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찬양을 말리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고백이 바로 예수님을 메시아, 우리를 구원할 바로 그 구원자라는 것을 세상에 외치는 진리의 소리이기 때문이죠.
누구도 이 외치는 진리의 소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온 인류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를 대속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이 소리를 막으려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야기했습니다.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와 같은 표현들이 그들에게는 상당히 거슬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대중의 외침이 납득이 되지 않았겠죠.
그래서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당당히 소리치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지금 외치는 나에 대한 메시아의 칭호는 마땅하다!”
“내가 바로 저들을 구원할 다윗의 자손이다.”
“그것을 마땅히 외치는 자들의 입을 막는다 하더라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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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메시지를 누구보다 더 외쳐야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아니었을까요?
마땅히 외쳐야 할 말을 외쳐야 할 사람들이 그 책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 진리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 사람들을 침묵시킨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바로 돌들로 진리를 외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입을 열어 외치도록 촉구하고 계신 것이죠.
바로 이것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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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이제 이방인을 부르셔서 그들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방인 중,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지도자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은 온 세계에 전파되어 세계 열방 곳곳에서 선포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언젠가 로마서의 말씀을 나누며 이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 싶습니다.
헌데, 만일 지금 이방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 우리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올바르게 성경의 가르침을 외치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맡겨진 복음을 제대로 잘 배우고 실천하고 전파하고 있나요?
지금 교회는 그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나요?
그리고 그 교회의 구성원 된 우리들은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를 주라 외치고 있나요?
로마서에는 유대인을 참감람나무의 가지로, 이방인인 우리들을 돌감람나무의 접붙인 가지로 비유하면서 경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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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르틴 루터, 장 칼뱅 등의 종교 개혁가들이 외치던 그 구호를 우리 한국교회는 다시 외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만일 이제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으면 이제 돌들이 진리를 전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우리는 담대히 진리를 세상에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예수님은 언젠가 다시 오신다 약속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돌들이 입을 열어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지 않도록, 굳이 하나님께서 돌들을 사용하시어 그 사역의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도록, 우리 접붙힌 가지들을 아낌없이 쳐서 내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올바른 성경 지식을 세상에 외쳐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를 이끌어가고 계신 목사님들과 교회 지도자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성도들을 올바른 성경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교회의 유익을 위한 감성팔이 설교가 아닌, 제대로 된 성경의 말씀을 선포해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인터넷 블로그, 유튜브, 책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닌, 먼 미래에는 인공지능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에게 찾아가서 질문하고 답을 얻고 성경을 배울 수 있도록 정말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올바른 성경을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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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돌들이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언하여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의 도입이 교회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지도 저는 함부로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만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미래를 조심스럽게 예측해보는 한 미련한 자의 예측일 뿐입니다.
흘러가는 시대를 바라보며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바둑 프로기사들은 인공지능에게 석 점을 내어주고도 패배합니다.
이제 목사님과 성도들의 성경적 지식은 인공지능의 수준에는 견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바둑학원에서 사람을 만나 직접 바둑을 배우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공지능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가나안 성도가 되어, 컴퓨터 앞에 앉아 성경의 진리를 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둑은 사라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바둑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손쉽게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땅히 진리를 외쳐야 할 사람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든 그 역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지만, 우리가 그 영원한 말씀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그릇을 사용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개혁하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과 번영신학, 신사도운동, 여성신학, 민중신학, 퀴어신학 등의 이상한 형태의 왜곡된 신학이 목회자를 양성하고 가르치는 곳에까지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우리 믿는 성도들이 지금 바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올바른 성경만의 메시지를 외치지 않았다는 직무유기라는 평가는 듣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8)